“어디서 뭘 배웠기에 문단에는 이렇게 XX새끼들이 많을까요?”
김현(36·사진) 시인이 최근 발간된 ‘21세기문학’ 가을호에서 한국 남성 문인들의 ‘여혐’(여성 혐오) 행태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질문 있습니다’란 제목의 기고에서 남성 문인들이 여성 시인들을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화한 사례를 적나라하게 열거하며 관행을 비판했다.
A씨는 송년회에서 후배 여자 시인에게 맥주를 따라보라고 명령하고, 맥주가 컵에 꽉 차지 않자 자신의 바지 앞섶에 컵을 가져가 오줌 싸는 시늉을 했다. 술에 취하면 여자 시인들에게 ‘XX같은 년’ ‘남자들한테 몸 팔아서 시 쓰는 X’ 같은 욕설을 했다. 젊은 여자 시인들 이름을 열거하며 성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시인의 사례도 있다.
김씨는 “(이런 사례들은) 문단 사람이라면 대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잠재적 방관자’다. 그런데 문단의 이런 사람들은 왜 아직도 처벌받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버젓이 살아남아 가해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라며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서 동료 문인들을 향해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혐오, 범죄 기록물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씨는 문단에서 여혐 행태가 버젓이 묵인되는 현실에 대해 개인사적 경험을 들며 한국 사회의 잘못된 집단 문화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진단했다.
기고 앞부분에는 외모 때문에 ‘미스 김’으로 놀림 받았던 학창시절, 대학의 상명하복 문화, 군대의 왜곡된 문화, 당연시 되는 가정 폭력 등을 고백했다. 김씨는 2009년 작가세계로 등단해 2014년 시집 ‘글로리홀’을 냈다. 인권영화제 기획 및 독립영화 연출을 하기도 했다.
김씨의 글은 SNS에서 활발한 논쟁을 유발하며 공감을 사고 있다. 소설가 김도언씨는 페이스북에 “문단에 발을 들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괴감과 수치심이 교차한다”며 “후배 시인의 용기에 지지 의사를 밝힌다”고 썼다.
이어 “저들은 이미 문단 동료들에 의해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거나 기피하고 무시해야 할 블랙리스트로 공유되고 있다”면서 “문화예술판 안에서 우리가 정작 파고들어 적발해야 할 대상은 권위라는 완전무결한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이라고 꼬집었다.
문학평론가인 김명인 인하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문학, 문단 그리고 여성혐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동조했다.
그는 “‘문단’이라는 곳에서는 종종 ‘시민 이하’의 일들이 많이 벌어져 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관대하게 보호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는 그런 곳을 문단이라고 보호해 줄 어떤 언턱거리도 없다. 문학이 별 게 아닌데 문단이 별천지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한국문단의 여성 혐오 고발합니다”
입력 2016-09-20 18:25 수정 2016-09-20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