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열린책들은 질과 깊이, 차별성을 추구하는 출판으로 정체성, 스타일, 팬덤을 확보한 이례적인 출판사로 성장했다. 주로 해외문학을 번역 출간하면서 ‘원전 완역’과 ‘전작 출간’이라는 원칙을 정립해 고수해 왔고, ‘개미’ ‘뇌’ ‘향수’ ‘좀머씨 이야기’ 등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를 6권이나 만들어냈다.
지난 12일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 내 열린책들 사옥에서 만난 홍지웅(62) 대표는 지나온 30년에 대해서 “열린책들에서 내는 책들은 대체로 번역이 좋다는 평을 얻었고, 우리 책의 디자인이나 만듦새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형성됐다”며 “열린책들 마니아층이 생긴 것이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1986년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를 꿈꾸며 직원 5명을 데리고 열린책들을 시작할 때부터 홍 대표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러시아나 유럽 문학에 주목했고,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해 그 작가의 진가가 대중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출간과 홍보를 집중하며 베스트셀러로 키워냈다. 또 한국소설이 역사와 사회 문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열린책들은 소설적 재미나 낯선 이야기에 가치를 두고 출간했다. 표지, 광고디자인, 마케팅 등도 달랐다. 홍 대표는 “기존에 없었던 걸 하자는 게 우리 생각”이라며 “비슷한 것은 일단 배제한다. 새로운 것을 하고 선례가 되자고 얘기해 왔다”고 말했다.
열린책들은 별도의 기념행사 없이 ‘대표 작가 12인 세트’를 출간하는 것으로 출판계와 독자들에게 창립 30주년을 알렸다. 이 세트에는 움베르토 에코, 파트리크 쥐스킨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로베르토 볼라뇨, 폴 오스터 등 이제는 열린책들의 얼굴이 된 작가들의 대표작이 망라됐다.
“지금도 밀리언셀러를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홍 대표는 “물론이다. 밀리언셀러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밀리언셀러는 이제 끝났다”는 출판계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그는 “100만부까지는 아니어도 수십 만부 팔리는 책들은 지금도 많이 나온다. 우리가 만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60만부 이상 팔렸다”며 “제대로 된 책이면 독자가 왜 없겠냐?”고 말했다. 문제는 독자나 휴대전화가 아니라 책,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제대로 된 책”이란 내용에서는 ‘독창적인 책’이고, 형식에서는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홍 대표는 “고만고만한 거 말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며 “한국문학이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이유도 고만고만한 이야기만 많이 나오기 때문 아니냐”라고 말했다.
“고만고만한 책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없어도 그만인 책들. 출판사들이 남이 하는 것 곁눈질하고, 트렌드나 유행을 바쁘게 쫓아간다. 그러다 보면 5년 뒤, 10년 뒤에도 남는 게 없다.”
열린책들의 ‘다음 30년’에 대한 구상도 물었다. 그는 “그런 건 없다”면서 “다만 40주년에는 무슨 책을 내야 되나, 그런 고민은 종종 한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책이 무엇인가 고민했다면, 요즘에는 소장하고 싶은 책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50년 뒤에 누군가가 소장하고 싶은 책, 찾아서 수집하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러려면 먼저 만듦새를 잘 해야 한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장정도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파주=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인터뷰]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 “창립 30년… 열린책들 마니아층 생긴 것 최대 성과”
입력 2016-09-20 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