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우] 저출산, 스웨덴의 교훈

입력 2016-09-19 18:53

1934년 9월 스웨덴에서 기념비적인 책이 나왔다.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알바 뮈르달 부부가 저술한 ‘인구 문제의 위기(Crisis in the Population Question)’였다. 저자들은 저출산이 지속되면 급속한 고령화로 이어짐을 경고하고, 출산 장려를 포함한 사회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식량 생산은 인구 증가를 따를 수 없다는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비관론이 득세하던 시절이어서 이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가난한 농업국가였던 스웨덴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대형 화물선이 연결되면서 값싼 미국 농산물이 쏟아졌고, 그로 인한 가격 폭락으로 수십년간 인구의 5분의 1이 이민을 떠나는 상황이었다.

뮈르달 부부는 출산율 변화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므로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국민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 정부도 이런 정책 제안을 받아들여 임신수당 지급, 야근 축소, 육아휴직, 바우처 지급, 무료 정기검진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조만간 인구절벽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인구절벽 상황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은퇴하는 시점인 2018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는 반면 신생아는 43만명에 불과할 전망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1930년대 스웨덴은 상황이 다르지만 당시 스웨덴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과 복지의 모범 사례가 됐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저출산 현상은 ‘누적된 인과관계’의 결과물이다. 최근 저출산 현상은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인과관계가 누적돼 나타난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 상황은 일자리 부족→저소득→만혼→과도한 육아비용→저출산으로 정리될 수 있다. 따라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일부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뮈르달 부부의 권고를 받아들인 스웨덴은 전체 일자리에서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이른다는 점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출산과 육아를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으로 봐야 한다. 양성평등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반등했던 스웨덴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문제에만 정책을 집중하기보다 양성평등에 관심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에게 국가는 ‘국민의 집(folkhemmet)’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정부 정책은 지원이라기보다 미래의 ‘국민의 집’을 위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임산부는 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출산 관련 정책은 병원을 통한 복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출산 과정은 질병이 아니므로 병원 중심의 복지정책에서 가족 중심의 장기적 사회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임신 5개월부터 아이가 세 살에 이르기까지 병원비는 물론이거니와 육아보조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건강한 국민의 집, 즉 국가를 짓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함은 물론이다.

군나르 뮈르달은 1974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신자유주의의 대부인 하이에크와 국가 역할을 강조하는 스톡홀름 학파의 태두 뮈르달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어오느라 사회 양극화가 극심해진 오늘날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 부문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