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루고 돌아와… 장애인에 희망 전하겠다”

입력 2016-09-19 00:10
조기성(왼쪽)이 17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패럴림픽 남자 자유형 50m(장애등급 S4)에서 우승한 뒤 생활보조 권도현씨와 함께 금메달을 깨물며 세 번째 금메달이라는 표시로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선천성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조기성은 편견과 신체의 한계를 딛고 꿈이었던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조기성이 17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수영장에서 열린 S4 남자 5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사진공동취재단
6세 때 경기도 광주의 한 재활병원에서 수영 중인 조기성(오른쪽)의 어린 시절. 조기성 선수 가족 제공
조기성이 2011년 경기도 이천의 한 수영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어머니와 대화하는 모습. 조기성 선수 가족 제공
조기성(21·부산장애인체육회)은 조산으로 태어났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잘 기어다니지 못했던 조기성을 보고 어머니 김선녀씨는 조산으로 태어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13개월이 된 후에도 나아지지 않자 병원에 들렀다. 그곳에서 김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태어나는 과정에서 작은 뇌혈관이 터져 하반신 기능이 마비된 선천성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장애인으로서 조기성은 많은 상처를 받았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같은 반 여자 아이가 짝을 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조기성은 대인기피증에 걸렸다.

재활치료도 힘들었다. 다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수영을 했지만 발을 쓰지 못하니 당연히 물이 무서웠다. 조기성은 “어릴 때 물에 들어가면 온 몸이 경직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수영을 하면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서 2008년부터 재활센터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줄곧 물속에서 살며 열심히 훈련했다. 수영을 한 지 6∼7개월 만에 재활센터에서 마련한 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때부터 조기성의 인생관이 달라졌다. 성취감을 맛본 것이다.

가족들도 그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 김씨는 개인 생활 모두를 아들에게 썼다. 실제 고교시절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매일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하며 아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나사렛대 특수체육학과에 당당히 입학하는 기쁨을 누렸다.

조기성의 꿈은 장애인 스포츠 최고의 축제인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그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출전에 앞서 “처음 가졌던 꿈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도전한다. 꼭 그 꿈을 이루고 돌아와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꿈을 향한 집념과 가족의 희생은 결국 모든 역경을 뚫었다. 처음 출전한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뿐 아니라 한국 수영 역사상 첫 3관왕에 오른 것이다. 조기성은 17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패럴림픽 남자 자유형 50m(장애등급 S4) 결선에서 39초30의 기록으로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상위 랭커 대부분은 중도 장애를 겪은 선수다. 그런데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조기성이 이런 기량을 가지게 된 것은 ‘기적’이다. 조기성은 “어머니의 희생은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빚”이라며 “그동안 고생하신 어머니께 보답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