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21)는 전형적인 ‘고립 청춘’이다. ‘남들 다 가는’ 대학 입학에 실패하면서 괴로움은 시작됐다. 재수가 삼수로 이어지면서 무기력함은 더해갔다. 활발한 성격이던 A씨는 친구들과 교류마저 끊었다.
상실감에 빠져 있던 A씨는 입대했지만 군생활도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고 우울감에 젖은 탓에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그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자책’ ‘고립’이었다. 지난해 말 자살까지 시도했던 A씨는 군에서 귀가 조치됐다. 지금은 병원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청년이 고립되고 있다. 대입,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통과의례에서 좌절하고 낙담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있다. 이들에게 ‘미결미취(결혼미성취, 취업미성취)’ ‘미결불취(결혼미성취, 불안정취업성취)’는 익숙한 낱말이 됐다. 미결미취 청년이 늘면서 ‘극단적 선택’도 많아졌다.
18일 ‘한국청소년연구’ 최신호에 실린 ‘청년의 성인초기 발달과업 성취 유형이 사회적 고립감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결혼과 취업을 못한 청년의 사회적 고립감은 결혼과 취업을 모두 이룬 청년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김재희·박은규씨는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이용해 28∼34세 청년 956명을 ‘미결미취’ ‘미결불취’ ‘미결취업(결혼미성취, 취업성취)’ ‘결혼미취(결혼성취, 취업미성취)’ ‘결혼불취(결혼성취, 불안정취업성취)’ ‘결혼취업(결혼과 취업 모두 성취)’으로 구별해 분석했다.
‘미결미취’ 유형이 느끼는 고립감은 갈수록 증가했다. 2010년 1.75점(4점 만점)이던 사회적 고립감은 2014년 1.94점까지 뛰었다. 반면 ‘결혼취업’ 유형은 사회적 고립감이 1.07∼1.09점으로 가장 낮았고, 변화도 적었다.
‘미결미취’ 청년은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청년 실업률은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혼인 건수는 급감해 지난해 30만2828건으로 10년 전(2006년 33만634건)보다 3만건 가까이 줄었다.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고립은 비극적 결말을 부르기도 한다.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원룸에서 취업준비생 박모(29·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타살이나 외부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남 거제에서 올라와 혼자 생활하던 박씨는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원룸으로 이사 온 뒤 8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못했을 정도다. 한참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였지만 숨진 박씨는 가장 처음 발견한 건 집주인이었다.
결혼과 취업이라는 관문에 맞닥뜨린 에코세대(1979∼1992년생)에서 ‘고립 청춘’은 두드러진다. 에코세대의 자살률 폭등이 증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에코세대의 자살률은 2001년 10만명당 4.79명에서 2011년 24.54명으로 5.12배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2007년 이후 학자금 대출에 따른 신용불량자 증가, 취업난 등으로 자살률이 뛰고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고립 청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용실 전문의는 “고립감을 느낄 때 의논할 수 있는 누군가, 작은 것이라도 성취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회적 상담 체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기획] 미결미취… ‘고립 청춘’ 갈 곳을 잃다
입력 2016-09-19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