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시작으로 불거졌던 제1차 북핵 위기는 북한의 ‘불바다’ 협박, 미국의 영변 핵시설 선제공격 주장 등 한반도를 최고조의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우여곡절 끝에 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이 위기는 일단락됐다. 미완의 해결책이긴 했지만 일단 대화로 푼 협상이었다.
2002년 2차 북핵 위기는 핵 개발을 위한 북한의 속내를 잘 보여준 사례다. 그럼에도 북한과 국제사회 간 대화의 틀은 계속 이어졌고, 이는 2005년 북한의 NPT 복귀 약속, 대북 중유 및 송전 등 내용을 담은 9·19공동성명 도출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2·13합의, 10·3합의 등 북핵과 관련한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화와 합의는 간간이 이어졌다. 비교적 최근인 2012년에도 북한과 미국은 핵실험 및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 대북 영양지원 등을 골자로 한 2·29합의를 했었다.
핵 문제에 대해선 남북 간에도 주요 합의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다. 한반도에서 핵이 없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이때 생겨났다.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가 철수한 것도 이 선언 이후부터다.
그런데 북핵과 관련한 북한과 국제사회 또는 남북 간에 이뤄졌던 이들 합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공통점은 바로 모두 하나같이 파기됐다는 것이다. 1차 북핵 위기 이후 20년 넘게 이어져왔던 여러 대화와 합의, 제재 국면 속에서도 북한은 핵실험을 5차례나 강행했다. 5차 핵실험으로 오기까지 대북 대화와 압박의 투트랙 전략, 전략적 인내 등 국제사회의 해법은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20년 넘게 북핵 포기를 위해 머리를 짜낸 시간은 북한에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 주요국들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는 이제 막을 수 없는 단계까지 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하지 않도록 적극 대응하는 길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능력 제공이 언급된 것처럼 강력한 대북억지력을 확보하는 게 거의 유일한 북핵 해법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 효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추가 제재 역시 어쩔 수 없는 길이 된 듯하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야권의 남북대화 병행 주장은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 지금이 일관된 대북 제재 국면으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야당도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합의 하나 없이 끝난 지난 12일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회동 결과는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대북특사나 또 다른 남북대화 제안을 거론할 때가 아니다. 특히 국가안보 문제를 야당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기회로 삼거나 또는 정치공학적으로 풀어선 안 된다. 과거 정부의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꼭 계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젠 엄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 역시 안보 문제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야당 설득과 소통엔 합격점을 받지 못한 듯하다. 북핵·북한 문제 대응은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 전략적 사고와 치밀한 논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정치는 논리로 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노력, 적극적인 소통이 있어야 정부와 여야 간 문제 해법 간극도 좁아질 수 있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뉴스룸에서-남혁상] 북핵 대응과 정치
입력 2016-09-18 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