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추석, 지진 후 남겨진 것들

입력 2016-09-18 18:57

추석이 끝났다. 추석 직전에 기상청 관측 이래 최고의 지진이 있었다. 추석이 끝나자 가부장제에도 지진이 있었던 것처럼 곳곳에서 균열이 시작됐다. 대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흩어졌던 이들이 한날한시에 모이는 날이 명절이다. 그런데 불목의 원인이 되는 날이 되어 많은 이들이 추석 후, 다음 명절인 설날까지 해결해야 할 마음의 병을 안고 돌아갔다. 나도 감기가 심해져 명절 다음 날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평소보다 세 배의 환자들이 몰려있었다. 모두들 흩어졌던 반가운 얼굴들로부터 감기몸살을 추석 선물로 받아 온 것일까.

아주 오랜 옛날 수렵·농경사회에서는 남자들이 밖에서 사냥해 오고 추수해온 풍성한 음식을 여자들이 집 안에서 요리해 그것을 주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돌아가신 분들을 떠올리며 차례를 지냈을 것이다. 그러다 중국에서 성리학이 들어와 현재의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이 또한 경제적으로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나 했지, 중인 이하의 서민들은 지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명절 차례는 해방 후 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모습이다. 전 국민이 ‘조선의 양반’이 되어 전후 쓰러져간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도 이만큼 잘살고 있다는 자위로 퍼져간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모인 날 많은 건수의 가정폭력과 형제간의 시비가 신고된다고 한다.

차례는 여자의 조상이 아닌 남자의 조상에게 지낸다. 가부장제를 가장 잘 유지해 주는 것이다. 차례를 잘 지내는 집안의 자손이 잘된다는 말 때문에 자신과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을 내 가족으로 여겨야 하는 여자들이 부당과 불합리를 참고 화목을 추구하다 보니 이타적 봉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선한 의지가 잘 전수된다면 그 집안 자손들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타적인 봉사심을 강요받아야 하고 모두들 나만의 희생이라 생각하니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의미도 없는 차례를 지내기 위해 불화하는 것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진정 자손을 위하는 것일까?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