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치한 지 만 4년 됐네요.”
이 한마디가 정치인 안철수의 궤적을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은 “정치 쇄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실천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보다 1년 전 이미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로 현실 정치에 발을 들였지만 그는 이날을 정계 진출의 시작점으로 삼고 있었다. 국회의원 임기로 치면 이제 막 꽉 채운 초선이 된 안 의원을 지난달 23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전남 광주(8월 27∼28일)·제주(지난 11일) 방문길에 만났다. 4년 전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그동안 가장 큰 변화는 ‘철수(撤收) 정치’란 꼬리표가 붙었다는 점이다. 2011년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내준 것, 2012년 대선 후보를 스스로 사퇴한 것, 2014년 독자 창당을 접고 민주당과 합당했다 결국 탈당한 것 등이 그런 예로 꼽힌다. 안 의원의 오랜 조력자인 최상용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은 13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렇게 냉소적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며 “그동안 우리 정치권에선 상상할 수 없던 양보를 했고 그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진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은 “남들이 철수했다고 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다 도전이었다. 나는 퍼스널리티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또 “정치적 성과는 지난 총선 때 확실하게 보여준 것 아니냐”며 “결과가 좋았으니 당 만들길 잘했다고 하지, 실패했다면 왜 만들었냐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안 의원의 정치 4년을 “부침이 있었고 시련도 있었지만 약속은 지켰다”는 말로 정리했다. 안 의원은 대선 출마 선언 후 지인들에게 “강을 건넜고 돌아갈 배를 불태웠다”고 각오를 보였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과연 언제까지 정치를 할까’라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의심은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 인사는 “안철수 정치의 특징이 본인의 권력 의지가 아니라 국민의 변화 의지에 의해 부름받은 정치라는 것”이라며 “처음엔 그런 소명의식만 있었다면 지금은 책임의식이 더 강해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기대를 접은 이도 있었다. 대선 캠프 후원회장을 지낸 조정래 작가는 “별로 한 일이 없어 평가할 게 없다”고 했다. 3당 체제를 만들어낸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별로 성과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향후 연대 가능성은 “후원회장을 한 걸로 끝”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렇다면 ‘안철수 현상’은 아직 유효한 걸까. 최 이사장은 “안철수 현상은 이미 객관적인 개념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 속에 담긴 국민의 바람을 안 의원 혼자 실현할 수도 없고 독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냉전의 유산인 양극단 세력의 적대적 공존으로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합리적 개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된다”고 했다. 안 의원이 제주 강연 때 “내년 대선에서 양극단 세력과의 단일화는 절대 없다”고 못 박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안 의원에게는 총선에서 확인된 변화에 대한 열망을 한 단계 끌어올려 조직화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국민의당 한 의원은 “정치권 밖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 안철수 현상이었는데 그 주축이었던 2030 세대가 2012년의 실패를 보면서 냉담하게 돌아섰다”고 했다. 이어 “지난 총선 막판에 2030 지지가 일부 복원됐지만 이것이 온전히 안철수를 향한 건 아니다. 국민은 지금 누가 변화를 이룰 사람인지 관찰하고 있고 안 의원은 시험에 들어있다”고 했다. 당 내부엔 “안철수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도 퍼져 있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은 “안 의원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줘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안 의원은 총선 후 달라진 것 같다는 말에 “나는 무릎팍도사(2009년)에 출연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람이 변하는 거,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냐”고 했다. 이런 ‘고집’이 정치판에서도 먹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누가 될지는 몰라도 3자 구도는 굳어졌다. 누구도 가능성이 있고 누구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 대선을 1년3개월 앞둔 현 시점에서 가장 그럴듯한 관전평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정치 인人사이드] “남들은 ‘철수’라지만 나에겐 도전이었다”
입력 2016-09-14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