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라이온 킹 ‘홈런 역사’는 계속된다

입력 2016-09-14 00:05
삼성 라이온즈의 5번 타자 이승엽이 1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8회말 2사 1루 때 투런홈런을 때리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뉴시스

이승엽(40·삼성 라이온즈)은 겸손하다. 홈런을 때리고 환호하지 않는다. 의기양양하게 타석 밖으로 방망이를 집어던지는 ‘배트플립’ 같은 건 당연히 없다. 고개를 숙이고 묵묵하게 베이스를 돌아 홈까지 들어간다. 홈런을 맞은 투수에 대한 배려다.

과묵하다. 개인기록이나 팀 순위를 놓고 첨예하게 경쟁하는 적이라고 해서 함부로 도발하는 법이 없다. 국가대항전에서 만난 ‘숙적’ 일본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승리하면 덤덤한 표현으로 자축하고, 패배하면 기꺼이 승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이차 10년 안팎의 후배들이 대부분인 야구계 동료들에 대한 존중이다.

억센 경상도 억양이 심심하게 들릴 정도로 침착한 언행만큼 행동 역시 신중하다. 프로야구에서 하루를 멀다하고 불거진 장내폭력, 승부조작, 부적절한 사생활로 구설에 휘말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남긴 흔적은 긴 야구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여러 대기록이나 해외진출과 같은 신분변화뿐이었다. 이승엽은 야구인생 30년, 프로에서 22시즌을 그렇게 살았다.

이승엽은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던 1986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출전한 공던지기대회에서 인근 대구중앙초 야구부 감독의 눈에 띄어 전학하고 유니폼을 입었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전학을 앞두고 1달 동안 수업을 마치면 대구중앙초로 달려간 이승엽의 집념을 꺾을 수 없었다.

촉망받던 좌완투수였다. 경상중 시절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1993년 청룡기에서 경북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4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될 때도, 그 다음해 졸업 후 연고지명 선수로 계약금 1억3200만원과 연봉 2000만원을 받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할 때도 이승엽은 투수였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입었던 팔꿈치 부상은 이승엽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이승엽은 삼성 입단 첫 스프링캠프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데뷔 시즌부터 365타수 104안타(13홈런) 73타점 타율 0.285의 맹타를 휘둘렀다. 그 다음해부터 주전 1루수 보직을 받고 타자로 완전히 전향했다. 타격 부문 대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는 이승엽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승엽은 1997년 홈런(32개) 안타(170개) 타점(114점) 1위를 석권하고 처음으로 최우수선수상(MVP)과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9년에는 홈런(54개) 타점(123점) 득점(128점) 출루율(0.458) 장타율(0.733)을 모두 휩쓸어 타격 5관왕에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50홈런은 그때 나왔다.

일본의 러브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승엽은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2004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했다. 처음에는 일본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각한 타격부진에 빠져 2군 강등의 수모를 당했지만 모든 시련을 노력으로 극복했다. ‘일본의 심장’ 도쿄돔의 4번 타자로 활약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야구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뒤 2011년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타향살이를 마감했다.

오랜 해외파 경력을 끝내고 돌아온 곳은 역시 삼성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일군 ‘국민타자’지만 적어도 국내 프로경력은 오롯이 삼성에서만 쌓은 ‘원팀맨’이다. 이승엽에게 삼성은 편안한 친정 이상으로 그의 야구인생 그 자체다. 이제 선수보다 지도자에 더 어울리는 나이지만 이승엽의 심장을 관통해 흐르는 ‘푸른피’는 여전히 뜨겁다.

이 뜨거운 피가 대기록의 원동력이다. 이승엽은 지난 1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에서 NC 다이노스를 4대 1로 제압한 홈경기 8회말 2사 1루 때 투런포로 한·일 통산 599홈런을 작성했다. 개인통산 600홈런은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등 세계야구에서 10명만 보유한 대기록이다.

이승엽의 끝없는 도전은 올 시즌 몰락한 ‘삼성 왕조’를 지탱하고 있다. 삼성은 사실상 가을야구에서 멀어진 시즌 종반 때 아닌 관중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13일 한화 이글스 홈경기를 앞두고는 홈런볼을 잡을 수 있는 외야 900석을 비우고 관중을 맞이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