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눈으로 지샌 내남면 할머니
“계속 흔들려서 불안해요.”
13일 오전 9시30분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에서 만난 김춘이(83) 할머니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전날 밤 두 차례 강진이 마을을 강타한 뒤 밤새 여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지진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마을회관에 모여 밤을 지냈는데 아침에 집에 들어가 보니 주방용기 등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난장판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날 이웃을 만날 때마다 “괜찮냐”고 물었다. 지진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서 발견됐다. 벽돌담이 기울어져 있거나 벽에 금이 간 집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차로 발생한 규모 5.1 지진 진앙은 내남면 부지리 경덕왕릉 부근이고, 2차로 일어난 규모 5.8 지진 진앙은 내남면 화곡리 화곡저수지 부근이다. 두 지역의 거리는 직선으로 1.4㎞ 정도이고 부지 1, 2리는 이 사이에 위치해 있고 현재 115가구 2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지1리 주민 김동희(57)씨는 내려앉은 기와지붕과 금이 간 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어제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소가 새끼를 뱄는데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최두찬(55) 부지1리 이장은 “2차 지진이 발생한 뒤 안전을 위해 방송으로 마을 사람들을 마을회관에 모았다”고 말했다.
부지2리 역시 전날 밤 공포에 떨었다. 박종헌(62) 부지2리 이장은 “벽에 금이 가는 등의 피해가 생기기도 했지만 가장 큰 피해는 주민들이 크게 놀란 것“이라고 밝혔다.
“계속 살아야할지…” 월성 주민들
“밤새 뜬눈으로 보냈어요.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스럽습니다.”
12일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경주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원전 주변 420여 가구 1000여명의 주민들은 대부분 밤잠을 설쳤다. 가족과 친지들의 안부전화가 밤새 이어졌고 주민들끼리 카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지진 공포’를 좀처럼 떨칠 수는 없었다.
동해안을 중심으로 원전이 밀집해 있다보니 주변 주민은 지진 소식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경북 동해안에는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에 6기, 울진 한울원자력본부에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경주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까지 들어서 있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와 인접한 월성원전 부근 양남면 나아리 홍중표(48) 이장은 “최근 세 차례 지진으로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월성원전이 잇따른 지진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책 없이 이 상태로 가다가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주민 조순미(59·여)씨는 “한숨도 못 자고 자동차에서 밤을 보냈다”며 “원전 측으로부터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지만 불안해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 김명자(63·여)씨는 “정부가 주민들 집단이주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까지 했다.
“고층아파트 무서워”… 해운대 주민
“철제 H빔이 찢어지는 듯한 ‘지지직’ 굉음에 놀라 건물 밖으로 정신없이 빠져나왔어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공포감에 휩싸여 밤새 잠을 설쳤어요.”
부산지역 초고층 ‘마천루(摩天樓)’ 아파트가 밀집한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 아파트에 사는 김모(60)씨와 이모(38·여)씨는 13일 경주 지진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80층에 거주하는 이씨는 “건물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심하게 흔들리면서 ‘죽음의 공포’를 처음으로 느꼈다”며 “아파트 곳곳에서 비명이 들리는 등 모든 것이 혼란 그 자체였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분위기를 설명했다.
두려움에 건물 밖으로 뛰어나온 이씨는 비명을 지르며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주민들과 함께 바닷가에 머물다 자정이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의 휴대전화도 불통돼 두 번째 지진이 발생한 뒤 30여분 만에 겨우 통화가 이뤄졌다. 이씨는 “남편이 돌아와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밤새 잠을 설친 주민들은 이날 오전 삼삼오오 모여 지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인과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해운대에는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20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는 80층(300m)의 부산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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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재산 최일영 기자,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
“롤러코스터 타는 듯한 공포… 밤새 뜬눈”
입력 2016-09-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