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 물류대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재 400억원을 출연했다. 최은영 전 회장이 부담키로 한 100억원도 곧 집행될 예정이지만 물류사태를 완전히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한진해운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한진그룹 내에서는 ‘여력이 없는데, 뭘 어떻게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3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조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개인 출연금 400억원을 한진해운 계좌로 입금했다. 계열사인 ㈜한진과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한 금융기관 대출로 마련된 돈이다. 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 계좌는 현재 법원이 관리하고 있다. 400억원은 향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승인 아래 한진해운 선박의 하역작업 비용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지난 12일 오후 6시 기준으로 한진해운의 비정상 운항 선박은 총 93척이다. 이 중 약 71척(컨테이너선 59척, 벌크선 12척)이 압류를 피해 외항에 대기 중이다. 나머지 21척은 현지 법원의 스테이오더(압류금지명령) 승인을 얻어 하역을 완료한 상태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미국을 제외한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 하역이 우선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며 “곧 400억원 자금 투입 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 전 회장의 100억원을 합치면 일단 500억원은 확보한 셈이다. 최 전 회장은 유수홀딩스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차입하는 방식으로 100억원을 추석 이후 입금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물류대란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한진해운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미국 하역 작업에 투입한 200억원을 합쳐도 700억원에 그친다. 법원에 따르면 물류대란을 해소하려면 약 17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1000억원이 부족한 셈이다.
또 스테이오더 발동 및 정상 하역을 위해 각국 정부와 법원, 터미널, 하역업체들과 해야 하는 비용 협상도 남아 있다. 하역을 완료해도 육상 수송 문제와 빈 컨테이너 처리, 미납 용선료 등을 포함해 600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항공이 미국 롱비치터미널 담보로 지원키로 한 600억원은 조달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는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 기업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가 경제 전반에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직시해야 한다”며 한진해운을 대놓고 비판했다. 전날 여야 3당 대표 회담에서도 박 대통령은 “한진해운의 자구 노력이 미흡했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한진해운의 청산이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지금으로써는 약속한 1000억원 조달 이상의 계획은 없다”며 “뭘 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치권과 정부가 한진해운에 모든 책임을 떠넘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국가 경제에 직격탄이 되는 물류대란을 막은 뒤 책임 여부를 가려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조양호 400억 내놨지만 물류대란 해소 턱없다
입력 2016-09-14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