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손님이 직접 잘라 드세요.”
세종시 노을3로에 있는 A갈비식당 직원이 손님에게 한 말이다. 이 식당은 지난달 말부터 고기를 구워주거나 잘라주는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메뉴 값은 1인당 2만5000원 이하로 내려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이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직자가 많은 세종시 식당의 달라진 풍경이다.
계산대 앞 분위기도 데면데면해졌다. 그동안 민원 때문에 세종을 찾는 산하기관이나 기업 관계자들은 공무원과 식사 후 자연스럽게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러나 최근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경우가 늘었다.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아직 법 시행 전이기는 하지만 괜한 구설에 오를까봐 각자 내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업자는 “예전에는 우리가 당연히 밥값을 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공무원들이 지갑을 꺼내더라”고 말했다.
세종청사에는 1만7000명에 달하는 정부부처 공무원과 5000여명 규모의 국책연구기관 종사자가 있다. 2000여명의 지방 공무원, 공기업 1000여명, 언론사 기자 100여명도 있다. 이들의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법 적용 대상은 더 늘어난다.
무분별한 청탁과 유착을 막자는 김영란법 취지와는 달리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고 있다. 세종청사 인근 식당들이다. A식당처럼 일부 식당들은 매출 급감 대책으로 인건비 절감을 선택했다. 또 다른 식당은 조선족 직원을 위해 아파트까지 마련해 운영했으나,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숙소를 없앨까 고민 중이다.
식당들은 직원을 줄이면서 서비스를 포기했다. A식당은 운영 개선 방안이라며 ‘고기 구워 드리는 서비스 폐지’를 알리는 인쇄물을 식당 곳곳에 붙였다.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방법을 매뉴얼로 만들어 친절히 알려줬다. 석쇠에 올린 고기를 뒤집고 자르는 시점과 방법부터 먹는 방법까지 적혀 있다.
음식의 질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청사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식당 주인 A씨는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매출과 원가를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서 “횟집 특성상 가격을 낮추면 음식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영란법의 혜택(?)을 기대하는 곳도 있다. 세종청사 내 구내식당이다. 세종청사에는 11개의 구내식당이 있다. 밥값은 3500원이다. 청사관리소도 법이 시행되면 구내식당 이용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달 말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이용자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의원실에 근무하는 국회 보좌관은 “피감기관 관계자들과 만나서 밥을 먹지 말자는 분위기”라며 “같이 먹더라도 구내식당을 이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관가 뒷談] 고기는 손님이 직접 잘라 드세요
입력 2016-09-14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