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식구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이 개를 키우지 못한 일이다. 강아지와 마음을 나누고 보살피는 일이 아이들 정서나 책임감을 키우는 데 좋다. 어른들도 동물과 교감하는 즐거움이 크고 더러 힐링을 얻기도 하는 모양이다. 페이스북 등 이런저런 SNS에서 만나는 푸들의 눈빛을 보면 가히 홀릴 정도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좁은 아파트 생활을 하는 데다 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의 알레르기 체질 때문이다.
개를 못 키우는 대신 동물애호가인 아내를 따라 월드컵공원 한쪽에 마련된 반려견 놀이터에 구경을 간다. 알록달록 수많은 개들 가운데 어릴 적 마당에서 키우던 누렁이는 없다. 놀이터는 소형견과 대형견용으로 나뉘는데, 견종이 다른 개들끼리 냄새를 맡으며 사귀기도 하고, 흙바닥을 박차고 질주하며 체력을 키우기도 하고, 기껏 나들이 오고도 섞이지 못하는 ‘혼놀족’도 있다. 귀하게 자라서인지 하나같이 털이 복스럽다.
TV를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잘 짜인 것이 ‘동물농장’이다. 장애가 있거나 버릇이 나쁜 개를 고치고, 위기에 빠진 고양이를 구하는 내용이 많다. 유기견의 슬픈 사연을 접하면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개밥 주는 남자’ 주병진의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웰시코기 3마리는 정말 개 팔자 상팔자다.
이렇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꼭 필요한 것은 동물의 본성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들였다가 쉽게 버리는 젊은이들은 더욱 그렇다. 개나 고양이가 처음부터 가축이 아니었듯 애완이나 반려의 대상이 된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인간이 개를 길들인 시간은 기껏 1만년 정도에 불과하니, 그 전에는 늑대와 같은 야생이었다는 이야기다.
김훈의 장편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엄연히 다른 개체의 독립성을 드러내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진돗개의 이름은 ‘보리’다.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신바람이 뻗쳐 있어야 한다. 신바람! 이것이 개의 기본정신이지. …이 세상을 향해 콧구멍과 귓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몸속에서 신바람이 저절로 일어나는 거지.” 작가는 단단하면서도 푹신한 개 발바닥에서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가늠한다.
가축의 밥은 늘 당당했다. 집 지키는 개, 쥐 잡는 고양이, 일하는 소, 계란 낳는 닭 등 가축의 임무는 신성했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식사는 주인과 더불어 떳떳한 것이었다. 개가 가축에서 반려의 지위로 올라섰다 해도 그 발바닥에 찍힌 정체성을 인정해야 하고, 대우도 거기에 합당해야 한다. 각질 제거와 치아 교정과 같은 과잉 미용, 한 달에 100만원 내고 다니는 개 유치원 등은 이런 기준에서 벗어난다.
고양이는 묘심(猫心)을 파악해야 한다. 뭐든 만져보고 싶은 호기심, 산들바람에 콧수염을 날리는 고독감, 누가 부른다 하여 함부로 다가서지 않는 자존심, 한없이 웅크렸다가 찬스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고양이의 마음이다. 이걸 알면 감히 고양이에게 목줄을 걸고 다닐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차한별 전시회에 갔더니 왼발로 생선 머리를 밟고 선 고양이 그림이 있었다. 그 의기양양함을 어디에 견줄까. 애완용 고양이 앞에 쥐를 풀어 놓으니 혼비백산하는 동영상도 봤지만 살아 펄떡거리는 고등어 한 마리를 던져주면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동물은 모두 나름의 삶을 자연스럽게 꾸려나갈 생태적인 습성이 있다. 그것들이 존중받지 못하면 오로지 먹이와 보살핌을 받기 위해 복종하는 수동적 삶을 살게 된다. 주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립의 영역을 넓혀줘야 한다. 명절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물에 대한 태도를 정리할 기회다. 사람과 개 모두 당당한 삶이 좋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청사초롱-손수호] 고양이에게 목줄을 걸면
입력 2016-09-13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