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선물과 뇌물

입력 2016-09-13 17:11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저녁, 추석. 햇작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고 선물로 새 옷 한 벌 얻어 입고 양철통에 든 과자 종합선물세트 받고 영화관까지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쌀 밀가루 설탕 소금 조미료를 ‘건강의 5적’이라 해 백색식품에 대한 경고가 따르지만, 생필품이 부족한 때에 이들은 아주 귀한 추석 선물이었다. 서로 어려움을 알고 보듬으려는 마음으로 선물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을 따뜻한 정과 함께 푸근하게 주고받던 것들이다. 선물이라기보다는 나눔의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풍족한 지금은 깊은 속정을 담은 선물보다는 마음을 담아 보냈다는 선물에 마음보다 훨씬 큰 청탁이 담겨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 위한 뇌물이 선물인 척 오가서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는 부패지수가 높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만연한 부정청탁의 뿌리를 뽑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마련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 선뜻 주면 선물이고 뇌를 굴리며 주는 것은 뇌물이란 말이 있다. 최근 법 시행을 앞두고 상품권 매출이 증가했다고 한다. 누가 얼마를 구입해서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소비했는지 알 수 없는 상품권이 뇌물 전달 수단으로 변질될 소지가 높다는 염려다. 뇌를 굴리며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뇌물이 음지화되지는 않을는지.

선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더 행복한 것 아닌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선물에 담아 전하고 싶은 것은 그를 향한 내 마음 아닌가. 마음의 값어치마저 법 테두리에 속한 것 같아 씁쓸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 속담처럼 모두가 가장 기쁘고 풍성한 이때처럼 늘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는데,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지진 때문에 불안감이 더해지니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명절에 평안이 선물로 주어지기를 바란다.

글=김세원 (에세이스트),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