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형을 좋아하겠죠?”
한명준(44) 평택 서정감리교회 목사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사륜구동차 안에서 딸 예진(17)이가 사준 분홍색 토끼 인형을 몇 번이고 들었다가 놓았다. 인형은 한 목사의 또 다른 딸 에밀리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한 목사는 지난달 국제구호개발NGO 월드비전을 통해 결연을 맺은 에밀리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일(현지시간) 월드비전 모니터링 방문단의 일원으로 말라위 음페레레 지역을 찾았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방문단을 반기는 주민들의 환영 세레모니가 이어졌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모여든 인파 속에서 한 목사는 10살 소녀 에밀리를 한눈에 알아봤다. 수줍은 듯 뒷짐을 지고 있던 에밀리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인형을 건넸다. 에밀리는 인형을 안고 쑥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한 목사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선물 보따리를 주섬주섬 열고, 책가방과 펜 공책 등을 선물했다.
에밀리는 흙으로 지은 작은 집에서 아빠 엄마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산다. 가족은 양파와 양배추 등을 재배해 생계를 겨우 유지한다. 에밀리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을 돕는다. 에밀리의 꿈은 의사다. 병든 사람들을 고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한 목사는 에밀리의 손을 붙들고 기도했다.
“에밀리와 그의 가족이 항상 건강하게 해 주세요. 늘 힘내고 용기 낼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게 해 주세요. 이 아이가 말라위의 미래가 되게 해 주세요.”
모니터링 방문단이 찾은 말라위는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1인당 GDP는 269달러로 하루 소득이 1.25달러가 안 되는 인구가 전체의 73.9%에 달한다. 말라위 국민의 평균수명은 43.5세에 불과하며 유아 사망률도 높다. 5세가 되기 전에 아동 1000명 중 110명꼴로 숨을 거둔다. 어린아이의 약 40%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월드비전은 이곳에서 학교 신축 및 보수, 식수시설 및 화장실 설치, 낙농업을 통한 소득증대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방문단이 지난 7일 방문한 음페레레 지역 테사 마을의 공터는 어린자녀들과 함께 온 여성들로 가득했다. 8933명의 주민이 사는 이 마을에는 병원이나 보건소가 없다. 1600여명에 달하는 어린이들도 각종 전염병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월드비전은 정기적으로 이 마을에 의료 인력을 파견해 5세 이하 아동들을 위한 각종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공터에 모인 엄마들은 안내에 따라 나무에 매단 저울로 아이의 몸무게를 쟀다. 엘리자(22)씨의 13개월 된 아들 보코살라의 몸무게는 8㎏대에 그쳤다. 국내 12∼15개월 아동의 평균 몸무게(10.41㎏)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이날 보코살라는 DPT(디프테리아, 파상풍 등 예방) 백신을 맞고 월드비전에서 제공하는 영양식품을 받아갔다. 엘리사씨는 “월드비전을 통해 아기가 배고픔을 면하고,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음페레레 지역에는 8곳의 초등학교에 8100여명의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정식 교사 자격을 갖춘 교사가 부족하고, 심각한 곳은 교사 한 명당 100여명의 학생을 담당한다. 열악한 시설 역시 학업을 방해하는 주요 요소다. 5일 찾은 얄라부초등학교는 이 같은 현실을 적나라게 보여줬다. 학생들은 먼지가 잔뜩 깔린 흙바닥에 주저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실 창문은 유리가 없이 뻥 뚫려 있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찢어진 옷에 맨발 차림이었다. 책가방이 없어 비닐봉지에 교과서를 넣고 다니는 학생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도 말라위 아이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NGO를 통해 전달받은 후원자들의 격려 덕분이다. 음페레레만 하더라도 월드비전이 2006년부터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벌인 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음부지예코 초등학교는 전남 여수 여도초등학교, 순천장로교회, 해남교회 등 한국후원자의 도움으로 올해 초 교실 2개동을 새로 지었다. 이제 학생들은 쾌적한 교실에서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이 학교 학생들은 한국의 후원에 감사를 표하며 ‘You are a good Samaritan(당신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방문단을 환영했다.
월드비전은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특별히 음페레레 지역에선 낙농업협동조합을 구성해 주민들이 젖소를 기르도록 하고, 우유판매와 새끼분양을 통해 돈을 벌도록 하고 있다. 지역 조합장인 세지요(54·여)씨는 2008년 지원 받은 젖소 한 마리를 잘 길러서 자녀들의 학비는 물론 새 집을 지을 자금도 확보했다. 12명으로 시작한 조합원 수는 현재 488명에 달한다. 세지요씨는 “단지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가난한 이들에게 우유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도 도움을 받은 만큼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식수확보는 말라위 주민들이 처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6일 방문단이 찾은 피터 마을의 경우 34가정 138명의 주민들이 오염된 물로 식수를 충당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는 지름이 5m정도인 물웅덩이가 나왔다.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인 웅덩이의 물은 회색빛이었고 흙먼지와 쓰레기로 오염돼 있었다. 특히 우기(10월부터 이듬해 4월)에는 산속에 있는 야생동물들의 배설물이 빗물에 섞여 물웅덩이로 흘러들어간다. 주민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설사로 고생하곤 한다. 월드비전 음페레레 사업장 매니저 오슬리(42)씨는 “올해 상반기에만 지역의 17군데에 식수시설을 설치했지만 아직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다”며 “식수확보는 생명과도 밀접한 문제인 만큼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9일까지 닷새간의 모니터링 일정을 마친 한 목사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사람들을 통해 남모르는 곳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걸 이번 방문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며 “도움이 필요한 이곳의 이웃들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교인들을 독려하고 그 관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감리교회는 11일 평택시 서두물로의 예배당에서 ‘월드비전과 함께하는 비전주일 예배’를 열고 말라위 모니터링 방문 보고순서를 가졌다. 이날 서정감리교회는 교회 차원의 후원과 성도들의 개인후원을 합해 약 200여명의 말라위 어린이들을 후원하기로 했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주로 음페레레 지역 어린이들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음페레레(말라위)=글·사진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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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13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