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39)은 현재 한국 연극계가 주목하는 극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를 졸업한 그는 2006년 ‘시동라사’로 데뷔한 후 소외된 사람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희곡들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연변엄마’(2011)와 ‘목란언니’(2012)는 국내 각종 연극상 희곡상을 휩쓸었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그가 9월 두 편의 신작을 동시에 선보인다. 두산아트센터가 27일부터 10월 22일까지 공연하는 ‘썬샤인의 전사들’(연출 부새롬)과 서울시극단이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함익’(김광보 연출). 비중있는 극장과 극단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가의 신작을 공연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먼저 ‘썬샤인의 전사들’은 그가 3년6개월 동안 쓴 작품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절필했던 작가가 꿈 속에서 만난 딸의 부탁을 계기로 한국 현대사 속에서 희생된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내용이다. 그를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세월호 사건이 극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원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앞으로 달려만 갔던 한국사의 문제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쓰게 됐다”면서 “TV에서 아이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뉴스를 들은 뒤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이 에어포켓(침몰한 배 안에 공기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세월호의 침몰을 보며 우리 현대사 어딘가에 갇혀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썬샤인의 전사들’을 마무리하자마자 그는 ‘햄릿’ 각색에 돌입했다.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재창작한 ‘달나라 연속극’,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을 재창작한 ‘로풍찬 유랑극단’ 등 고전희곡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각색의 귀재’로 불리는 그가 이번에 도전한 것은 올해 서거 400주년을 맞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함익’은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는 여자’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햄릿 이야기다. 복수극인 원작의 행간에 숨어있는 햄릿의 심리와 고독, 특히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해 현재 서울에서 사는 재벌 2세 여교수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는 “원작을 읽으면서 햄릿의 심리가 매우 여성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복수극인 원작이 심리 드라마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랫동안 마음을 병들게 한 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봤다. 그래서 내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김은성 극작가 “세월호 보며 현대사에 갇힌 아이들 극작 결심”
입력 2016-09-13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