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위 해운회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회사를 키워도 부족할 판인데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고 가는 한국은 과연 그런 해운사를 가질 자격이나 있는가. 이번 사태를 보며 깊은 자괴감이 든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물류대란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긴급좌담회에서 ‘한진해운 안락사’ 결정으로 물류대란을 몰고 온 정부와 채권단을 거세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번 구조조정의 기본 방향은 금융논리가 우세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며 “해운산업 차원의 통합을 통해 구조조정을 했어야 하는데 이번 사태에서 해양수산부는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평택대 물류학과 교수는 “조선업을 신체기관 중 ‘위’로 볼 수 있는데 위에 문제가 생기면 위 수술만 하면 되지만 해운은 세계를 떠다니는 ‘핏줄’인 데도 정부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제시한 ‘부채비율 200%’ 가이드라인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해운업계는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보유 선박을 팔아 빚을 갚고 장기 용선계약을 맺었다.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높은 용선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실이 쌓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연 교수는 “선주협회에서 물류대란 가능성을 우려했음에도 정부와 채권단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러고도 개별기업에 국가 차원의 물류 문제를 맡기거나 책임지게 하는 것은 역할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또 “물류 사태에 대해 정치권과 청와대에 책임을 묻지 않고 대주주(대한항공)와 대주주의 대표이사(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공권력이 민간에 불평등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한항공과 조양호 회장을 압박하는 상황도 비판했다. 대한항공과 조 회장은 각각 600억원, 400억원을 내놓기로 한 상태다. 최 교수는 “법정관리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채무를 조정하는 것인데 이미 자기 손을 떠난 회사를 대주주라는 이유로 개인적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주주에게 사재 출연을 강요하는 것은 주주 유한책임 법리를 넘어선 초법적 요구”라며 “사재 출연 요구는 법정관리의 본질에도 반한다”고 덧붙였다.
연 교수는 “주식회사제도를 유지하는 한 주주의 유한책임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며 “기업 부실 원인이 사업 실패라 해도 경영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경영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진해운에도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호황에 대비하겠다며 비싼 용선료를 주고 선박을 대거 빌림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맞았다”며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발행 등 단기부채를 무리하게 차입해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2009년 155%였던 부채비율은 2013년 1445%로 늘었다.
이 교수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간 데는 한진그룹과 정부에 모두 책임이 있다”며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자율협약 신청 이후 5개월 가까이 이해당사자들이 제대로 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시간을 보내 결국 물류대란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물류대란이 일어난 지 6일 뒤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고, 그 이후에도 특별한 대책 없이 우왕좌왕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9시까지 한국무역협회 수출무역애로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는 323개사 329건으로 주말 직전인 지난 9일보다 8.6% 늘었다. 신고 화물 금액은 약 1억2000만 달러(1332억원)다.
전 한진해운 회장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사재 1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자신이 보유한 유수홀딩스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진해운 노동조합은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 ‘해운업, 한진해운, 선원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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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창욱 허경구 기자 kcw@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한국은 과연 세계 7위 해운사 가질 자격 있나”
입력 2016-09-13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