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데타 집단 제거를 빌미로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자 터키의 대표적인 지성인 오르한 파묵(64·사진)이 “피의 복수를 멈추라”고 일갈했다.
파묵은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에 기고한 글에서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 모두 잡아들이고 있다”며 “터키는 법치국가에서 빠르게 멀어져 공포 정권으로 향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사상의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맹렬한 증오심을 동력으로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묵은 소설 ‘내 이름은 빨강’ ‘눈’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05년 터키에서 금기시되는 1차 세계대전 중 아르메니아인·쿠르드족 학살 사건을 언급했다가 국가모독죄로 기소되는 등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예전부터 에르도안 정권에 비판적이던 파묵은 지난 7월 군부의 쿠데타 실패 이후 처음으로 정권 성토에 나섰다.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도 체포된 터키 지식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200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존 맥스웰 쿠체, 이탈리아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 등 전 세계 유명 작가·학자 54명이 공개서한에 이름을 함께 올렸다. 이들은 “실패한 쿠데타가 매카시즘 같은 마녀사냥의 핑계가 될 수 없고, 국가비상사태라는 이유로 인권이 무시돼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매카시즘은 1950년대 초 미국을 휩쓴 반공주의 광풍을 말한다.
이들은 지난 10일 터키 유명 저술가 알탄 형제가 전격적으로 체포된 것에 충격을 받아 집단행동에 나섰다. 진보 성향 신문 타라프의 주필을 지낸 언론인 겸 소설가 아흐메트 알탄과 동생 메흐메트 알탄 이스탄불대 경제학 교수는 쿠데타 전날인 지난 7월 14일 TV 토크쇼에서 쿠데타에 관한 메시지를 교묘하게 퍼뜨렸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쿠데타를 진압하고 닷새 뒤 3개월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에르도안 정부는 무소불위의 비상사태법을 앞세워 비판세력 탄압 수위를 높이고 있다. 100명 넘는 언론인이 쿠데타 공모 혐의로 구금됐다. 102개 언론매체가 폐쇄돼 기자를 포함해 2300여명이 실직했다. 다수의 언론인은 쿠데타 수사를 이유로 출국이 금지됐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탄압도 공공연하다. 터키 정부는 11일 쿠르드계 지역 선출직 시장 28명을 전격 축출하고 임명직으로 교체했다. 24명은 분리주의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에, 4명은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 관련 조직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파묵 “터키, 실패한 쿠데타 핑계로 마녀사냥”
입력 2016-09-1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