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이 만든 도전정신

입력 2016-09-13 00:04 수정 2016-09-13 09:23
이주희(왼쪽)가 지난해 2월 스위스 중부 베른주 인터라켄의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에서 아내 이미경씨와 다정하게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경씨 제공

8년 전 2008 베이징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사격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던 국가대표 사격선수 이주희(44). 그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메달 소감이 흘러나왔다. “장가부터 가야겠다”는 말이었다.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땄으니 이제 둥지를 틀고 사격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이주희는 소원을 이뤘다. 아내 이민경(35)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는 4년 전 런던대회에 이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서도 2개의 메달을 추가해 3회 연속 패럴림픽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며 응원한 아내 민경씨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딸 윤서(7) 예윤(5)까지,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2년 11월, 이주희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인천의 강철 파이프 생산회사에 다니던 중 아연 도금로에 실족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펄펄 끓는 도금로에 잠긴 다리를 절단해야만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양다리를 잃은 것이다. 1996년 재활 치료차 요양하던 중 동료들을 따라 우연히 사격장을 찾았고, 총구를 표적지에 겨눌 때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삶이 여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주희는 특유의 집중력과 끈기를 바탕으로 국내외 무대를 휩쓸기 시작했다. 첫 패럴림픽에서 메달까지 따내며 최고의 총잡이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하루빨리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2남3녀 중 장남이었던 탓에 결혼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적극적인 구혼 작전을 펼친 끝에 2010년 아내와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 민경씨는 대한장애인사격연맹의 직원이었다. 이씨는 “남편은 정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모든 게 좋아 보였어요. 그야말로 콩깍지가 씐 거죠”라며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의 말처럼 이주희는 로맨티시스트다. 두 번째 메달을 딴 뒤엔 “많이 좋아한다. 혼자 애기들 돌보느라 고생 많아”라고 곧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굉장히 가정적인 남편이라 평소에 아이들도 돌봐주고 언제나 친구처럼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게 아내 민경씨의 말이다.

이주희의 목표는 패럴림픽 최정상에 서는 것이다. 아직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리우로 떠나기 전 “세 번 도전에 실패는 없다. 최고가 되자.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꿈을 이루고 태극기를 리우 하늘에 휘날리고 오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내던졌다. 그러면서도 아내에게는 “큰 기대하지 말고 마음 편히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9일(이하 현지시간) P1 남자 10m 공기권총과 11일 P3 혼성 25m 권총에서 은메달, 동메달을 딴 이주희는 14일 P4 혼성 50m 권총에서 또 하나의 메달을 노린다. 아내 민경씨는 “지금까지도 잘했다.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며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있다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