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코스타(28·첼시)에게 2013년 10월 29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였던 코스타는 당시 소속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연고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모국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스페인의 국가대표를 선택했다.”
브라질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통보였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을 선택한 축구선수는 이미 많았다. 프랑스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알제리 태생 지네딘 지단(44·레알 마드리드 감독), 이탈리아 최초의 흑인 공격수인 가나 이민자 마리오 발로텔리(26·니스)가 대표적이다. 모두 이중국적자여서 가능했다. 코스타도 그랬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새로운 조국에서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해 세계 축구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다.
문제는 8개월 뒤 월드컵 개최국이 브라질이라는 점이었다. 코스타의 선택은 다른 국가의 우승을 위해 스스로 버린 모국을 정복하러 돌아오겠다는 의미였다. 스페인과 브라질 모두 우승후보로 지목됐던 탓에 필연적으로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코스타의 편지는 브라질로 도착하자마자 불똥이 돼 돌아왔다. ‘배신자’ ‘매국노’라는 험악한 말들이 코스타의 심장으로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코스타가 우여곡절 끝에 2014년 6월 출전한 브라질월드컵. 스페인은 거짓말처럼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스페인은 본선진출 32개국 중 브라질 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야유를 받은 국가였다. 코스타는 자신을 향한 야유와 욕설을 견디지 못했다. 절박한 표정으로 때린 슛은 번번이 빗나갔고, 그때마다 울상을 지었다. 고작 3경기 만에 짐을 꾸리고 돌아온 스페인에서 ‘패배자’ 취급까지 당했다.
월드컵을 마치고 이적한 잉글랜드 첼시에서 새롭게 출발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첼시의 사령탑은 조금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주제 무리뉴(53·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다. 코스타는 이미 브라질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첼시로 합류했지만 상대방이 조금만 도발해도 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감정기복이 심했다.
무리뉴 감독은 이런 코스타를 2014-2015 시즌 중후반부터 전력에서 배제했다. 뛰지는 않고 싸움만 하는 코스타에게 ‘악당’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코스타의 축구인생이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시기다.
하지만 그대로 무너지란 법은 없었다. 무리뉴 감독이 지난 시즌 성적부진으로 떠나고, 유로 2016에서 이탈리아를 8강으로 이끌었던 안토니오 콩테(47) 감독이 올 시즌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코스타는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 냉정한 무리뉴보다 화끈한 콩테가 코스타에게 더 호의적이었다. 콩테 감독은 “코스타의 기질을 바로잡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열정적인 선수가 좋다”고 은근하게 치켜세웠다. 코스타는 콩테 감독이 새롭게 재편한 첼시에서 스트라이커로 다시 발돋움했다.
코스타는 12일 영국 스완지 리버티 스타디움에서 스완지시티와 가진 2016-2017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에서 멀티골을 넣어 2대 2 무승부를 이끌었다. 후반 35분 바이시클킥으로 동점골을 넣는 묘기까지 선보였다. 지금까지 4골. 득점 선두다.
3년 전 스페인 국적을 선택해 시작하고 싶었던 제2의 축구인생은 이제 찾아왔다. ‘배신자’의 낙인이 붙었던 무리뉴의 악당에서 콩테의 영웅으로 변신한 코스타의 희망찬가는 이제 시작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굴곡의 축구인’ 코스타, 희망의 찬가 부르나
입력 2016-09-12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