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가장 큰 원인은 피해자의 경제적 자립에 있다. 가해자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하다 보니 가정으로 돌아가고, 다시 가정폭력의 ‘덫’에 걸려든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자립 정책을 내실화하고, 가해자가 법원의 처분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정폭력에 관한 법은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두 법은 지금까지 10차례 넘게 수정을 거듭해 왔다. 지난 19대 국회 때에만 두 법과 관련해 총 40개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피해자 보호, 국가 책임”
가장 시급한 것은 자립 지원이다. 경제력이 부족한 피해자들은 보호시설을 나가면 가해자가 있는 가정으로 마지못해 돌아간다.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시설에 입소한 피해자들이 경제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직업훈련비가 있기는 하다. 다만 올해 예산은 총 2억원뿐이다. 시설에서 나온 피해자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임대주택은 276가구에 불과하다.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연구센터장은 12일 “직업훈련비, 임대주택 등을 내실화해 피해자 자립을 초기 단계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시 폭력이 반복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2부장도 “경제적인 부분을 국가가 지원해준다면 피해자가 오롯이 자신만을 고려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피신한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지급하고, ‘자립지원금’을 주는 방안이 담겼다. 정 의원은 “피해자 보호가 국가 책임이라는 원칙 아래 가정폭력의 특수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다양한 욕구를 법안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가해자 격리·처벌 제대로 해야
가해자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형사처벌과 보호처분이 모두 가능하지만 보호처분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법 취지가 퇴색됐다”며 “가해자에 대한 교정프로그램마저도 제대로 이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가해자 격리 조치를 내실화하기 위해 감호위탁시설을 규정하는 방안은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발의한 가정폭력특별법 개정안에 담겼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체포우선주의를 도입하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폐지하는 방안이 포함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2013년 개정안도 빛을 보지 못했다.
해야 할 역할이 많은데도 경찰 인력이 부족한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권양희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법원에 출석하지 않는 가해자들에게 동행영장을 발부하면 경찰이 집행해야 하는데 이 집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임시조치를 내리면 구치소에 유치하는 것조차 인력이 없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장은 “사후관리 측면을 강화해야 하지만 치안수요가 많은 지역은 가정폭력에 대응할 인력이 터무니없이 모자란다”고 토로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사생활 침해와 낙인효과 때문에 경찰이 개입하기 조심스러운 부분도 여전히 걸림돌”이라며 “사후 모니터링 제도는 취지가 좋지만 경찰이 시민의 24시간을 들여다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집안일’ 아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 관련자들도 심각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정폭력을 범죄로 보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소현 부장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법의 도움을 받아 재발을 방지하려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경찰, 검찰, 법원 등 법적 담당자들도 현행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미 교수도 “법이 마련된 지 한참이나 됐는데도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가볍게 보는 기존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 가정폭력의 유형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황정임 센터장은 “가족이라는 구성단위 안에서 배우자 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가 일어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칸막이를 허물고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때”라고 했다. 박소현 부장은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 가족 구성원 간의 폭력양상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 가정폭력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며 “우선 이미 갖춰진 가정폭력 관련법을 노인학대 등에도 적극 적용하면서 가정폭력 대책 전반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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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전수민 임주언 기자 suminis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가족 안의 괴물 <5·끝>] 피해자 보호하고 자립 도와야 ‘폭력의 덫’ 탈출
입력 2016-09-12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