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시간도 되기 전에 전화가 울린다. 욕설이 쏟아진다. “내 화물을 당장 내놔라”는 화주의 전화다. 이 정도면 괜찮다. 해외 직원들은 흉기를 들고 온 거래처 사람들을 보고 기겁하기도 한다. 한진해운의 1500여명 직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물류대란을 해결하고 회사를 살릴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진해운 선원노조는 12일 싱가포르를 찾아가 억류된 한진로마호의 선원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배가 억류되면 선원들도 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과 식량은 물론이고 용변까지 모두 배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요한 선원노조 위원장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선원들은 배를 지키고 화물을 화주에게 인도하기까지 책임을 끝까지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한진로마호 문권도 선장이 보내온 편지에도 생존의 문제보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제4군 역할을 하는 해운을, 또 가장 많은 국가필수선대를 운용하고 있는 한진해운을 이대로 없앤다면 그 손해나 위험이 막중하다”며 회사와 해운업의 앞날을 걱정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억류된 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현지 항만, 화물, 해운 관계자들이 배에 올라와 항의를 하기도 하고 어려운 처지를 공감해주기도 한다. 이 위원장은 배 안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배를 찾아온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한진해운과 한국은 세계 해운업계에서 신뢰를 잃었다, 이걸 회복하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 저희 직원들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갈무리를 잘해 우리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독일에 근무 중인 한 임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한진해운 사태가 확산되는 걸 우려하고 있고 매일 보도하고 있다”며 “억울하고 분해 잠이 안 와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고 썼다. 해외 직원들은 시차 때문에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50년 동안 함께했던 세계 70여개국 1만8000여 고객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생각한다”면서도 “현지 물류업체에서도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해운 무역업 50년사 최고의 재앙이라고 격앙하며 같이 걱정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저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와 중국의 주재원들은 칼이나 도끼를 들고 가족을 협박하고 있는 물류업체들 때문에 대사관의 신변보호 요청을 했습니다.”
국내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본사의 한 부장급 간부는 “영업사원들부터 항만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아침에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욕설을 듣는다”면서 “배들은 멈춰 섰지만 화주들, 고객들이 도와 달라고 요청을 계속 해와 수시로 비상회의를 열고 방안을 찾으며 응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느냐는 분노와 걱정까지 직원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며 “그래도 이렇게 백방으로 뛰고 있는 저희들의 마음을 국민이 알아주면 좋겠다”며 끝내 흐느꼈다.
한진해운 직원들은 지난 9일 밤 인터넷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올렸다.
“한진해운 모든 육해상 직원은 그 책임을 깊게 통감하고 있으며, 저희 회사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국내외 모든 분들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저희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해상 직원들은 마실 물이 부족해 구호가 시급한 상황이며, 해외 주재원 및 가족은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한진해운을 살려주십시오.”
한진해운 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와 직원들은 지난 7일 서울에 올라와 한진그룹 본사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12일에는 서울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2003년 부산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한진해운에 입사해 선원으로 일해 온 이 위원장에게 한국 해운업이 이렇게 위기를 맞았는데 뱃사람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후회? 한 번도 그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요. 마지막까지 우리 회사를 살리고, 태극기를 달고 바다를 누비는 한국 해운업을 지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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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거래처 사람들 욕설부터 시작… 흉기 들고 위협도”
입력 2016-09-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