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재정 누적흑자가 2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17조원에서 8개월 사이 3조원이 더 불어나며 지난해 건강보험 전체 지출액의 42% 수준까지 높아졌다. 흑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가입자에게 되돌아가야 할 돈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고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 건강보험 체계 개편 등 굵직굵직한 변수를 생각하면 흑자 규모가 크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반론도 있다.
11일 건보공단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실에 제출한 올해 건강보험 재정통계를 보면 지난달 말까지 건강보험 수입은 37조7387억원으로 지출(34조5421억원)을 웃돌았다. 이 기간 흑자 규모는 3조1966억원, 누적흑자 규모는 20조1766억원에 달했다.
흑자 증가 속도는 건보공단의 예측보다 빠르다. 건보공단은 올해 누적흑자 규모가 17조3010억원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20조원을 넘어서는 시점은 2019년으로 내다봤다.
흑자 규모가 빠르게 불어난 것은 지출 증가율이 예상보다 더 낮아진 영향이 크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09년과 2010년 급여비 증가율은 각각 13.0%, 12.4%였다. 하지만 2011년의 급여비 증가율은 6.4%로 낮아졌고,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급여비 증가율은 3.3∼6.5%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건강검진 등이 보편화되면서 각종 질환을 조기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경기침체 장기화로 병원을 잘 찾지 않는 환자가 많아진 것이 그 배경이다.
흑자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자 매년 수입과 지출 규모에 맞춰 재정을 운용해야 하는 건보재정 특성에 배치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게 됐다. 보험료를 과도하게 거뒀거나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은 상황에서 누적흑자 증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수만은 없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5.6%로 OECD 국가 평균(72.9%)에 크게 못 미친다. 입원 시 건강보험 보장률은 55.0%로 OECD 꼴찌 수준이다. 전반적인 보장률도 OECD 평균을 밑돈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3200만명에 이르는 등 전 국민이 이중으로 보험료 부담을 떠안게 된 것도 낮은 보장률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누적흑자 규모가 결코 크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는 데다 공공의료지출도 차츰 늘어나는 등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2060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하면서 보험료율을 2022년까지 8.0%로 인상하더라도 건보 재정이 2025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몇 년간 경제여건이 좋지 않아 의료비용을 줄이는 경향은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고 세계적 현상”이라며 “경기회복 시 의료 수요가 폭발했던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도 주요 변수다. 사공진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야당의 개편안을 감안해도 매년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재정의 규모가 수조원대”라며 “내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건보 재정의 향후 변수 또한 크다고 볼 수 있어 누적흑자 20조원이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건보 누적흑자 20조 돌파… 씀씀이 놓고 논란 “보험적용 확대를” VS “고령화 대비해야”
입력 2016-09-12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