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있는 산업·국토부, 대기업 편의 봐주려 ‘선심’

입력 2016-09-11 19:00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체 임직원들은 원칙적으로 일반 민원인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이 속한 기업의 민원사항을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게 그들의 업무다. 출입증 발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 ‘로비스트’가 공무원과 똑같은 기능을 가진 출입증으로 청사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보안상 문제는 물론 형평성 차원에서 고쳐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왜 문제인가

보안 문제 발생은 외부 침입보다는 내부 문제 때문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4월 발생한 공시생 청사 침입 사건도 공무원증을 분실하고도 신고하지 않고, 사무실 비밀번호를 벽에 적어놓는 등 내부의 안이한 보안의식이 단초가 됐다. 이번에 출입증을 발급받을 자격이 안 되는 기업 임직원들에게 상시 출입증을 ‘선물’해 준 것 역시 내부 공무원들이었다. 행정자치부 훈령인 청사출입보안지침은 외부인의 출입증 발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각 부처와 계약된 외부업체 직원 등 구체적인 청사 내 업무가 있어야 가능하며, 월 8회 이상 자주 청사를 찾는 외부인의 경우 명확한 방문 목적과 해당 부처 장관의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부장은 11일 “청사가 세종시로 옮긴 이후 내려오는 횟수가 크게 줄어 많아야 한 달에 3∼4회”라며 “주 2회씩 3개월 연속 청사 출입 도장을 찍어 출입증을 발급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기업이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출입증을 발급해줬다. 최종적으로 자격을 심사할 청사관리소는 기계적으로 출입증을 발급해줬다.

청사보안강화대책을 만든 행자부 관계자는 “출입증 관리는 청사관리소 소관”이라며 “우리는 계획만 세울 뿐 구체적인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해당 부처, 청사관리소, 행자부 모두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힘센 부처, 큰 기업 위주 편의 제공

불법 출입증을 발급받은 240명의 기업체 임직원 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101명은 10대그룹 소속이었다. 이외에 한국전력과 한전 발전자회사, 강원랜드 등 대형 공기업과 중·대형 건설사 임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전체의 30%인 71명은 4대그룹 임직원이었다. 심지어 71명 중 18명에 대해 청사관리소는 직책도 확인하지 않고 출입증을 발급해줬다.

이들에게 출입증을 내줄 것을 청사관리소에 요청한 부처도 편중돼 있다. 청사관리소가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았지만 240명 중 절반 이상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대다수의 부처가 기업 관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다수 부처의 보안 관계자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기업 관계자에게 출입증을 발급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한 민간기업 협회 관계자는 “출입증을 발급받는 것은 그만큼 해당 부처 공무원들과 친분이 돈독하다는 의미”라며 “우리처럼 힘없는 협회는 그럴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정부가 힘 있는 기업들에 사실상 ‘묻지마’ 출입증을 발급해준 셈”이라며 “대관 업무를 하는 수천개의 기업체 중 왜 4대그룹에만 불법 출입증이 남발됐는지 해당 부처가 납득할 만할 이유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