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햇볕과 제재, 우리는 하나라도 전력투구를 해봤던가

입력 2016-09-11 18:50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가 12일 청와대에서 만난다. 박 대통령이 전격 제안했고 여야 모두 즉각 응했다. 추석 이후로 예상됐던 회동이 앞당겨진 데는 북한의 5차 핵실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번 실험은 북한 핵무기가 실전 배치를 목전에 뒀음을 보여줬다. 대응 전략에 전면적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는 건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초당적 협력을 요청할 테고 안보 문제에 민감해진 야당 대표들도 화답할 것이다. 의례적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정말 이번만큼은 사진 찍어 보여주는 회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북핵 위기를 맞았다. 마땅한 대응책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핵에 맞서 역대 정부가 택했던 전략은 햇볕과 제재, 크게 두 가지였다.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정반대의 길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당근을 주며 대화와 평화로 유도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바뀌면서 8년 넘게 제재와 압박을 가해 왔다. 5차 핵실험은 두 전략이 모두 실패했음을 뜻한다. 햇볕도, 제재도 북한이 핵을 버리게 하지 못했다. 여기서 짚어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햇볕정책에 100% 전력투구를 했던가. 과연 제재와 압박에 우리 역량을 100% 쏟았던가. 햇볕정책은 시작한 날부터 폐기되는 날까지 ‘퍼주기’란 비난에 시달렸다. 제재·압박은 부수적 조치인 사드 배치 같은 문제가 몇 달씩 공전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더라도 국민 다수가 선택한 정부에서 결정했다면 적어도 안보 전략만큼은 이 나라 역량을 100% 투입해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죽고 사는 문제이기에 그렇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전통을 갖고 있지 못한데, 그런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위기를 맞았다.

대안이 마땅치 않을 때 길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그 길이 성과로 이어지게 하는 책임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청와대 회동에서 정치적 입장은 다 내려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기를 바란다. 북핵은 우리 혼자선 풀 수 없는 국제 문제가 돼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미국에 간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처음 동행해 미 하원의장 등을 만날 것이다. 6자회담 당사국 의회 간 대화 등을 추진할 거라고 한다. 여와 야, 정부와 국회가 모처럼 함께 뛰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단기적 성과를 넘어 초당적 협력의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위기일수록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차가운 머리로 바라봐야 길을 찾을 수 있다. 김정은의 정신 상태를 언급한 대통령 발언은 부적절했다. 짜증이 묻어난다. 뉴욕타임스는 북핵을 ‘광기’가 아닌 ‘약소국의 이성적 대응’으로 분석했다. 감정적 언어는 스스로 입지를 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