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8개월 만에… 北, 히로시마 원폭급 과시
입력 2016-09-10 04:02
북한은 9일 오전 9시30분(평양시 오전 9시)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실시한 5차 핵실험이 ‘핵탄두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이번 핵실험에서 ‘표준화·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동작 특성,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했다’는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기체계에서 ‘표준화, 규격화’는 같은 형태의 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북한이 핵탄두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지난 4차 핵실험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실시된 이번 실험의 폭발력은 이제까지 실시된 실험 가운데 최대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핵무기의 표준탄 위력으로 보고 있는 15㏏에 가까운 폭발력에 근접해 북한이 실질적인 핵무기보유국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을 기준으로 15㏏ 이상의 폭발력을 보이는 핵무기를 표준탄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단 1발의 핵폭탄으로 10만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추가로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 5차 핵실험의 폭발력을 우리 군은 10㏏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미국 등에서는 20㏏ 이상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8개월 만에 이 같은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은 이전보다 핵무기 완성화에 대한 속도전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핵탄두 실험은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에 탑재해 실전에 사용할 있는 핵탄두를 만들어 폭발시키는 시험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 실험에 성공했다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핵탄두를 소형화했다는 것으로 핵미사일 실전배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국책연구원 핵·미사일 전문가는 “북한의 발표와 이번 핵실험의 위력을 감안하면 북한은 국제기준으로 표준탄 정도의 핵무기를 양산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며 “대응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군은 그간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근접했다고 평가했지만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경량화하지는 못한 것으로 봤다. 정부와 군은 북한이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한 지 10년이 됐기 때문에 소형화 기술은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핵실험 후 7년 만에, 구소련은 6년, 프랑스와 중국은 2년 만에 핵탄두를 소형화했다. 하지만 북한은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의 경우, 한반도를 공격권에 넣는 스커드 미사일은 중량 1t 정도, 노동이나 사거리 3500㎞ 이상인 무수단 미사일은 700∼800㎏ 정도,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600㎏ 이하가 돼야 한다.
북한은 올 들어 핵탄두 소형화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사일 기술이 진전되더라도 핵탄두를 장착할 수 없다면 폭발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3월 9일 핵탄두 기폭장치로 추정되는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부문 과학자들에게 기술지도를 하는 사진을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 또 3월 15일 김 위원장은 “핵 공격 능력의 믿음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이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두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이번 5차 핵실험을 통해 국제적으로 핵무기로 인정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핵탄두를 양산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갔다는 의미가 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스커드 계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의 소형화를 이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이나 무수단, ICBM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진전됐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 해도 갈 길은 멀다고 보고 있다. 무수단 등 중거리 이상 미사일에 장착하려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 북한은 올 들어 무수단 시험발사 시 고도 1400㎞ 이상 발사한 뒤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역시 대기권 재진입했다. 단 이때는 핵탄두를 장착하지 않아 안정성이 충분히 점검됐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은 4차 핵실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기존 핵폭탄의 위력을 증강한 ‘증폭핵분열탄’을 시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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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