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5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또 한번 요동치고 있다. 지난한 ‘강 대 강’ 대치 속 추가 핵실험으로 남북관계는 한동안 출구 없는 대립국면에 빠져들게 됐다.
북한은 올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군사도발을 이어왔다.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에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하지만 북한은 곧바로 지난 2월 장거리 로켓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 4호’를 발사했다. 불과 한 달 사이 핵실험과 핵 운반 수단인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에 연이어 성공해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정부는 광명성 발사 사흘 만에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남북 간 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포기하는 선제적 결정으로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대북제재 필요성을 어필해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이끌어냈다.
오랜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해 강도 높은 대북제재가 발효됐지만 북한은 핵·미사일 전력의 고도화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7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잇달아 개최해 ‘김정은 체제’가 굳건함을 강변하며 ‘핵·경제 병진노선’을 재천명했다. 더불어 안보리 결의 이후 스커드·노동·무수단 등 다종의 탄도미사일 20여발을 쉴 새 없이 쏘아 올렸다.
우리 정부와 미국은 이 같은 북한의 위협에 지난 7월 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맞섰다. 하지만 중·러의 반발로 대북제재 구도가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를 틈타 국제사회와 남한 내부를 향한 선전 공세에 착수했다. 동시에 최근 수년간 공들이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성공시키며 실전배치가 임박했음을 과시했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에서 ‘핵탄두의 로켓 장착 실험’에 성공했다고 강조하고 그간 주장해 온 ‘다변화된 핵무기 병기화’를 상당부분 구체화·현실화했다. 이에 따라 남북 간 ‘비핵화’ 대결구도는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정부는 우선 기존 대북 압박의 수위를 끌어올려 북한에 응분의 대가를 안긴다는 구상이다. 안보리 차원의 강도 높은 추가 결의와 미국 등 개별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 제재), 우리나라의 독자제재 강화 등을 신속히 조율·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해 상반기 보여준 것과 같이 지속적인 군사 역량 강화와 각종 도발로 응수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의 강경기조는 올해 말 다음 미국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별다른 변수 없이 지속될 전망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미 4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는 일종의 끝장게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우리가 북한에 대해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카드는 군사적 조치 말곤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게 북한의 제5차 핵실험으로 다시 확인되었다”며 기존의 제한적 조치가 한계를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우리 자체적으로 핵 억지력을 도모해야 한다는 ‘자위적 핵 보유’ 주장도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일각에서는 “사실상 우리만의 비핵화로 전락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공식 폐기하고 즉각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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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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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10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