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그림값이 가장 높은 작가는 김환기(1913∼1974)다. 대표작인 전면점화 ‘무제’가 지난 6월 54억원에 팔리는 등 역대 그림가격 4위까지 모두 그의 차지다. 김환기의 작품이 상한가를 치는 것은 부인 김향안(1916∼2004)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세계 화단에 남편의 작품을 널리 알린 열정 덕분이다.
1916년 경성(서울)에서 태어난 김향안(본명 변동림)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36년 이상(1910∼1937) 시인과 결혼했으나 1년 만에 사별하고 44년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다. 시와 그림 분야에서 당대의 두 천재 작가와 결혼했으나 그의 삶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김향안은 1938년 매일신보에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 수필집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 ‘카페와 참종이’ 등을 쓴 문인이었다. 그림에도 소질이 다분해 양귀비, 튤립 등 꽃그림과 이국적인 풍경을 그렸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후 ‘김환기 전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월하의 마음’ 등 저서를 통해 남편의 예술세계를 알리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75년부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환기재단 활동을 시작해 78년 2월 27일 김환기의 65세 생일을 기념해 미국 뉴욕에서 환기재단 출범을 선언했다. 한국에서 남편의 작품을 소장·관리할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92년 11월 서울 종로구에 최초의 사설 개인 미술관인 환기미술관을 설립했다. 이후 2004년 뉴욕 근교 묘지에서 남편과 함께 영원히 잠들었다.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을 맞아 환기미술관이 특별전 ‘더 뮤즈, 김향안의 이야기’를 마련했다. 김향안의 삶을 들여다보는 1부 ‘Her story’(10월 23일까지), 환기미술관과 작가들에 얽힌 얘기를 풀어내는 2부 ‘Timeless’(10월 28일∼내년 1월 15일)로 구성됐다. 올 상반기에 열렸던 ‘김환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의 저변을 보여주는 전시다.
전시 제목에 ‘뮤즈’를 붙인 것은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은 그리스 신화 속 여신 뮤즈처럼 김향안이 김환기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을 독려하고 지원해 충만한 예술활동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김향안의 일대기와 예술여정을 그의 저서, 작품, 유품, 영상 등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김향안은 77년과 88년 뉴욕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미술관 본관 메인홀에 부부의 작품이 나란히 걸렸다.
김환기가 현대미술의 현장인 뉴욕에서 부단한 노력으로 한국 추상미술의 새 지평을 열기까지 예술적 고민을 함께 나눈 흔적이 엿보인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자료들이 김향안의 파란만장했던 88년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02-391-7701).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김환기 있기까지… 세계 화단에 알린 김향안의 내조 있었다
입력 2016-09-11 2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