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포기 촉구한 국제사회에 보란 듯 핵으로 맞서

입력 2016-09-10 04:13
기상청 관계자가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지진화산센터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인한 지진이 발생한 곳으로 분석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역을 손으로 가리키며 지진 발생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이번 핵실험으로 측정된 인공 지진파. 뉴시스

북한이 9일 5차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원하면 어느 때건 핵실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의도다. 국제사회의 잇따른 핵 포기 촉구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핵 포기가 아닌 핵 감축 협상과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내적으로는 북한 정권수립일인 9·9절을 맞아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속내도 있다.

북한이 9·9절에 전략적 도발을 할 것이란 예상은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정주년’이 아닌 68주년이어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같은 대형 도발보다는 최근 수개월간 추세처럼 중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을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특히 북한은 이미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수소탄 시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해 추가 핵실험을 할 필요성이 낮으리란 추측도 있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9일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에 맞춰 실험했다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성취를 대내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김정은 정권이 지속되는 한 핵 포기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라면서 “정권의 성취를 강조하는 한편, 대외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다는 자세를 천명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중·일·러 등 주변국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갖고 이들 국가의 ‘북핵 불용’ 의지를 재확인했다. 8일에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북핵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고도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한계를 함께 드러냈다. 핵실험을 하면 한반도 사드 배치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고 미·중, 한·중 관계를 악화시켜 자신들의 외교적 입지를 늘리겠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은) 최근 개최된 항저우(杭州)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미·중, 한·중 간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표출된 것을 확인하고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우려 없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적기로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핵실험 후 이 사실을 발표한 주체의 격이 1∼4차 때보다 낮다는 점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1∼3차 핵실험 당시 외무성 명의 성명으로 사전 공지를 했었다. 기습적으로 이뤄진 4차 핵실험 때는 사후에 정부 명의 성명으로 실험 사실을 확인했다. 5차는 예고 없이 이뤄진 점에선 같지만 정부가 아니라 ‘핵무기연구소’ 명의로 발표했다. 이미 수차례의 핵실험으로 ‘핵 강국’이 됐으니 정부가 직접 나서 발표할 만큼 새삼스런 일이 아니란 얘기다.

대북 제재가 심화되기 전 핵탄두 소형화를 완성하고자 시간에 쫓기며 이번 핵실험을 했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가장 큰 이유는 제재가 계속 강화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제재와 압박이 더 강해지기 전에, 다시 말해 아직 버틸만 할 때 빨리 핵실험을 해 소형화, 경량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조급증도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관련기사 보기]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