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코수스 “색·형태 아닌 의미 좇는 게 개념미술이지요”

입력 2016-09-11 20:35
조셉 코수스가 지난 6일 서울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자신의 작품 ‘한 개이면서 세 개인 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품은 실제 프라이팬, 사진사가 찍은 프라이팬 사진, 프라이팬의 사전적 정의를 늘어놓은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디에도 작가의 노동은 들어가지 않았다. 이를 통해 그는 완성된 작품이 아닌 아이디어 자체를 작품으로 보는 ‘개념미술’이라는 새 장르를 열었다. 구성찬 기자

마르셀 뒤샹(1887∼1968)을 아는 사람이라면 조셉 코수스(71)를 알아야 한다.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른 두 사람. 뒤샹은 남자 좌변기를 전시장에 작품이라고 내놓곤 ‘샘’(1917)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센세이셔널한 사건 이후 콘크리트처럼 굳건했던 미술의 정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미술은 회화든, 조각이든 예술가의 숙련 끝에 나오는 창작물이었다.

그런데 뒤샹에 이르러 기성품(오브제)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미술 작품의 지위를 얻었다. 미국 작가 코수스는 뒤샹의 생각을 발전시켜 1960년대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개념미술의 아이콘인 코수스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에서 최근 개막한 ‘아트스페이스 독일전’에 맞춘 것이다. 이 전시엔 그를 비롯해 1970∼90년대 독일을 무대로 활동했던 ‘노마드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동그란 안경에 펠트 모자, 세련되면서도 편해 보이는 검은 옷. 6일 서울대미술관에서 만난 코수스는 누가 뭐래도 예술가차림이다. ‘거드름 피우는 대가’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은 금세 사라졌다. 쾌활했고, 자상했다.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 등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교수답게 거듭 풀어서 설명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설계해 유명해진 서울대미술관 건축물 얘기를 그가 먼저 꺼냈다. “미술과 건축의 차이를 말하자면 뒤샹이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처럼 배관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요. 건축은 배관이 있는 조각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뒤샹을 환기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산파’에 비유했다. 모더니즘의 초기, 뒤샹의 작품 세계에서 선보였던 레디메이드(기성품)가 왜 중요한지 알아보고 그 가치를 다음 세상에 알렸다는 것이다. 자신이 뒤샹에 빚을 진 것처럼 뒤샹도 자신에게 빚을 졌다는 얘기다.

개념미술은 뭘까. 미술을 모르는 일반 독자를 위해 쉽게 설명해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요청했다. “색이나 형태가 아니라 의미(개념)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이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젊은 시절, 이렇게 말해 엄청난 스캔들 메이커가 됐지요.”(웃음)

모더니즘까지의 미술은 회화, 조각, 사진 등 매체별로 자신의 한계와 씨름해왔다면 (개념미술, 대지미술 등)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어떻게 작품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한 개이면서 세 개인 의자’(1965년작)를 발표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실제 의자, 의자를 찍은 사진, 의자의 사전적 정의를 나란히 진열한 작품으로,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의자일까’라고 물으며 기존의 미술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켰다.

“그걸 발표할 때가 20세였어요. 구겐하임에서도 퐁피두에서도 전시를 했지만 당시 나이를 비밀에 붙였지요. 젊은 사람의 작품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 28세 때에야 개념미술에 대한 이론화가 돼 실제 나이를 밝혔는데, 미술계가 발칵 뒤집혀졌지요. 하하.”

그 때 쓴 개념미술에 대한 이론을 담은 ‘철학 이후의 예술’은 지금 미술대학의 필독서다. 뉴욕 비주얼아트스쿨 등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26세 때부터 다시 철학과 인류학을 공부하며 ‘미술계의 철학자’가 됐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 프랑스에서의 68운동 등 불안정한 시대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 “반전운동 등 권위에 대한 저항이 미국을 휩쓸었습니다. 저는 회화 같은 형식도 미술에서의 권위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개념미술은 탈상업화 전략으로 등장했다.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 팝아트 작가를 예로 들며 “이들의 작품은 아주 흥미롭지만 시장을 통해 전파됐다. 미술의 의미가 시장에서 규정되고 있는게 현실이었다. 나는 미술의 상업화에 저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수스는 9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 공공미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의 타이페이 국제공항에 한자를 써서 두루마리처럼 길게 늘어세운 벽화(‘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를 제작했다. “공공미술 분야의 개념미술인 셈이다. 미술관 전시는 관객이 제한돼 있어 일반인에게 더 접근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건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했다.

코수스는 8일 서울대 미대 스튜디오를 돌며 대학원생 6명의 작품에 대해 2시간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