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무등산을 마주하고 있는 동남쪽 언덕에 자리를 잡는다. 광주사람들이 드나들기를 꺼렸던 곳이다. 어린아이를 풍장(風葬)하던 무덤자리다. 풍장은 시신을 나무 위에 매달아 두는 장례를 일컫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장례 기사를 보자.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는 해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다. 칠 일 뒤에 유체가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 나라사람들이 합장하려고 했지만 큰 뱀이 나타나 쫓아다니면서 방해했다. 다섯으로 분리된 몸을 각각 장사지내서 다섯 무덤(五陵)이라 했다. 또한 뱀무덤(蛇陵)이라고도 한다.”
시신을 나무에 걸었다. 살이 썩고 뼈가 땅에 떨어졌다. 뼈를 모아 매장했다. 수장과 재장으로 풍장한 것이다. 박혁거세는 원래 신라 사람이 아니다. 청동기를 가지고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 유민이다. 북방 풍장을 남쪽 지방에 전한 것이다. 동쪽 강 언덕에 가매장했다가 동쪽 산에 묻었다. 재장 했다. 풍장으로 재장 하는 우리 고유 장례방식이다. 지금은 풍장을 이상적인 장례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린아이가 죽었거나 비정상적으로 죽은 경우에는 최근까지 풍장을 했다. 광주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죽으면 나무에 걸어서 풍장 했다. 생활이 어려워서 풍장을 한 것이 아니라 의레 그렇게 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풍장하던 자리에 광주선교부(Mission Station)를 건설한다. 양림교,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오웬기념각 등 ‘근대’를 짓는다. 서양교회, 근대식 병원, 근대식 교육기관, 근대식 공연장 등 광주사람들은 난생 처음 근대를 마주한다. 죽은 자들이 저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민족이 근대사회로 가는 길목으로 전환된다.
무덤자리를 근대문화 발상지로 바꾼 선교사들은 양림동 언덕 맨 위에 새로운 무덤자리를 만든다. 우리 조상들은 언덕 위에 무덤을 만들어서 저 세상으로 손쉽게 갈 수 있도록 했다. 선교사들도 더 높은 동쪽언덕에 자신들을 위한 무덤자리를 잡는다. 하늘나라로 속히 가기를 간절히 소망했을까. 저 세상으로 가는 동네를 새 세상으로 가는 동네로 바꾼 서양선교사들도 양림동 언덕 위에 있다.
최석호 <목사·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최석호의 골목길 순례자-광주 양림동 선교사 무덤] 무덤, 근대로 가는 길목
입력 2016-09-09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