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지 못한 발상” “오만한 생각”… 與 ‘모병제 충돌’

입력 2016-09-09 04:27

모병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 무상복지, 대학입시 개혁 등 국가적 정책 이슈가 정치권에 급부상하고 있다. 모두 여권 잠룡들이 최근 대권 행보 기지개를 켜는 과정에서 경쟁하듯 입장을 밝히며 시작됐다.

정쟁만 일삼던 정치권에서 구체적인 정책 논의가 꿈틀대고 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잠룡들이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려고 대형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던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가장 ‘핫’한 사안은 모병제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 극복을 위해 모병제 도입 불가피론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불이 붙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자제들만 군에 입대할 수 있다”며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공정성 문제로 치환했다. 유 의원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 남 지사는 8일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추구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규정은 오만”이라며 “히틀러도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무전입대 유전면제”(정우택 의원)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한 논란”(원유철 의원) 등 중진들도 한마디씩 말을 붙이며 모병제는 일단 정치권에서 ‘굴러가는 사안’이 됐다. 이정현 대표도 “얼마든지 (모병제에 대한) 의견은 있을 수 있지만 실시한다 하더라도 몇 년이 걸리고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일”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스폰서 판·검사 논란 등으로 시작된 사법개혁 이슈에서는 공수처 도입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유 의원이 “안 받을 이유가 없다”며 찬성 의견을 밝히며 사실상 당론 반대 입장인 새누리당 내부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최근 청와대를 비판하며 공수처 신설을 요구했다. 당 관계자는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마냥 반대만 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했다.

서울과 성남의 청년수당 문제는 무상복지 논쟁으로 확산될 태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날 강연을 통해 “과거 무상급식 논쟁으로 복지의 개념이 오염됐다”며 “(우리나라는) 어르신 표가 필요할 땐 노인수당 공약을, 젊은 표가 필요할 땐 무상급식 공약을 내세우는 등 단편적인 복지정책만 있다. 복지 원칙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의 브랜드인 ‘선별복지’를 꺼내든 셈이다.

유 의원은 휘발성이 강한 외고·자사고 폐지와 대입제도 대수술을, 남 지사는 개헌을 통한 수도 세종시 이전 주장도 던졌다.

이 같은 이슈들은 모두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들이다. 구체적인 정책이슈를 놓고 대권 잠룡들이 건전한 토론을 통해 해법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가 나온다. 여권 내부에선 대권 주자가 야권에 비해 열세라는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인물이 안 뜨니 유권자에게 민감한 이슈를 던져 주목도만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모병제 전환 의견은 27%로 4년 전 15.5%에 비해 늘었지만 징병제 유지 응답 61.6%에 비해서는 한참 못 미친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주류 친박(친박근혜)계가 지도부를 장악하면서 입지가 좁아진 비주류 잠룡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외에서 이슈를 던지며 대권 행보를 예열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다짜고짜 모병제 등 이슈를 꺼내드는 건 대선이 가까워오니 각자가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이라며 “인지도 측면에서 주목받는 효과는 있겠지만 현실성 없는 국방 문제 등을 정치 쟁점화한다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