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사기… 하일성, ‘야구장’ 밖에서 무너지다

입력 2016-09-09 00:00

“야구 몰라요. 역으로 가나요.”

프로야구 팬들치고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명 해설위원인 하일성(67·사진)씨가 자신의 예측이 틀리거나 빗나갈 때 늘 했던 말이다. 그는 프로야구가 태동했을 때부터 마이크를 잡았다. 원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팬들은 온전히 해설자에 의지해 TV를 보며 경기에 열중했다. 그 시절 하씨는 재치 있는 입담과 예측능력으로 많은 팬들을 TV 브라운관으로 끌어들였다. 야구 해설 하면 ‘하일성’이었다. 덕분에 프로야구는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됐다.

그랬던 하씨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8일 오전 7시56분쯤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하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직원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씨의 유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숨지기 전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부인에게 보내려다 그만둔 흔적이 확인됐다. 하씨 부인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명예가 실추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가슴 아파했다.

하씨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현재까지 30년 넘게 해설가로 활동한 야구계의 거목이다.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성동고와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일선 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1979년 동양방송에서 고교야구 해설을 하면서 처음 해설위원의 길로 들어섰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는 KBS 해설위원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이후부터 하씨는 허구연 MBC 해설위원과 함께 야구 해설계의 양대 산맥이 됐다. 허씨가 국내외 야구와 이론에 능했다면 하씨는 거침없고 화려한 입담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2년에는 심근경색과 위종양 진단을 받았지만 병마를 이겨낸 뒤 다시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많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씨는 또 2006년 5월 한국야구위원회(KBO) 11대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며 해설위원에서 행정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다만 야구 바깥에선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씨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식을 숨어서 몰래 봤다. 부모님이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군 장성이었던 아버지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선고받았고,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는 등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법정 소송에 휘말리며 입지가 좁아졌다. 하씨는 지난 7월 ‘아는 사람의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지인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사기)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 왔다.

그는 또 계속된 경제적 문제로 재산까지 탕진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소유하던 경기도 양평 소재 전원주택 부지가 부채 등으로 법원 경매에 나왔다. 지난해 1월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피싱에 사기를 당하면서 당시 경제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하씨는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야구 해설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 계속된 경제난과 법정 소송에 고통 받던 하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과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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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규엽 김판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