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이 법원의 한진해운 긴급자금 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해외 선진국의 대처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뒷짐’만 지는 한국 정부와 달리 해외 주요 국가들은 해운업의 중요성을 감안, 자금난을 겪는 업체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회생시키는 쪽을 택하고 있다.
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국적의 세계 3위 해운사인 ‘CMA CGM’도 한진해운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막대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 선언을 할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 물류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자 프랑스 정부는 대대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국부펀드인 전략투자기금(FGSI)을 동원해 1억5000만 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15억 달러 규모의 은행 대출을 보증하기도 했다.
CMA CGM도 책임 있는 자구책을 내놨다. 항만부서의 지분 49%를 차이나머천트홀딩스에 매각해 4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선박 일부와 자산을 매각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쳤다. 뼈를 깎는 노력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CMA CGM은 2013년 회생에 성공했다. 이후 싱가포르의 APL 등을 인수하며 규모를 불려가고 있다.
독일 하팍로이드(Hapag-Lloyd)도 정부 지원으로 살아난 경우다. 2009년 위기가 찾아오자 독일 정부는 18억 달러 규모의 정부 대출 보증을 제공했다. 함부르크시는 7억5000만 유로를 아예 현금으로 지원했다. 독일 정책금융기관인 독일부흥은행은 같은 해 중소 해운사 지원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을 도입해 150억 유로의 펀드를 조성했다. 하팍로이드도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 외에 보유 선박 128척 가운데 절반에 달하던 용선 비중을 대폭 줄이며 체질개선에 나섰다. 결국 하팍로이드는 지난 6월 두바이에 본사를 둔 UASC 인수를 발표하며 세계 5위 선사로 재탄생했다.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도 비슷하다. 덴마크 수출신용기관인 EKF는 2009년 11월 머스크에 4억6000만 달러의 융자를 제공했고, 수출신용기금 5억2000만 달러 금융지원도 했다. 중국의 경우 2008년 이후 정부가 COSCO와 차이나쉬핑 등 선사에 41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은 해운업계 지원책으로 이자율 1%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고, 인도 정부도 21억 달러를 마련해 자국 선주를 지원하기도 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선진국들은 해운업체가 구축한 물류망을 산업의 핵심으로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업체를 다시 살리는 데 성공했다”며 “업체의 노력과 함께 정부 지원이 있어야 경쟁력 강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STX조선해양에 4조600억원,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 등 조선업계에 천문학적인 돈을 지원하면서도 해운업계에는 너무 인색하다”며 “한진그룹이 1000억원을 내놓기로 했으면 정부도 화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진해운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조선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선사가 국내 선사로부터 수주한 선박은 모두 25척(106만CGT)으로, 글로벌 수주량 248척(959만CGT)의 약 10%에 그친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해 배를 빌려준 외국 선사가 용선료를 못 받게 되면서 자금 부족으로 신규 발주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진해운의 최대 용선주인 시스팬이 과거 10년간 한진해운에 컨테이너 3척을 빌려주고 받은 돈은 3억6370만 달러다. 한진해운은 지난달까지 이미 1860만 달러를 연체한 상태다. 시스팬이 보유한 선박 113척 가운데 절반가량인 58척은 국내 조선소가 건조했다. 그리스 선주사 다나오스도 한진해운과 8척의 용선 계약을 맺은 상태다. 다나오스가 보유한 전체 선박 58척 중 48척은 현대중공업그룹,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성동조선해양 등 국내 업체가 건조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외국 해운사가 한진해운과의 계약을 해지해도 새로운 용선처를 확보하기 쉽지 않고, 자금 타격도 만만치 않아 결국 국내 조선업계까지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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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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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09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