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에 얼굴 없는 기부 천사 ‘키다리 아저씨’가 찾아왔다. 2003년부터 시작된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이 대를 이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성구는 고(故) 키다리 아저씨(익명 기부자)의 아들(68)과 딸(70)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백미 10㎏짜리 2000포대(4600만원 상당)를 기부해 왔다고 8일 밝혔다. 앞서 키다리 아저씨 아들은 지난달 중순 수성구 희망복지지원단 사무실에 직접 찾아와 쌀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지난 6일 5t 트럭 두 대에 쌀을 가득 실어 수성구 범어동 수성구민운동장으로 보냈다.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난 것은 13년 전이다. 수성구에 살던 키다리 아저씨는 2003년 추석 직전 20㎏짜리 쌀 500포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처음으로 수성구청에 기부했다. 이후 키다리 아저씨는 매년 추석을 며칠 앞두고 쌀을 기부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10여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기로 마음을 먹고 선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다리 아저씨는 절대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성이 박씨고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와 서문시장에서 장사로 돈을 번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쌀 기부 선행을 이어오다가 노환으로 201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가 96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뜻은 자녀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남매도 수성구에 신원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고 한다. 남매는 올해는 물론 2014년(2000포대)과 2015년(2000포대)에도 수성구에 쌀을 기부했다. 지금까지 이들 가족이 기부한 쌀은 2만6000포대(6억원 상당)에 이른다.
수성구는 키다리 아저씨 남매에게 전달받은 백미를 동주민센터, 경로당, 사회복지시설 등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에 전달할 계획이다. 수성구 관계자는 “아들 역시 아버지처럼 티셔츠 차림의 수수한 모습으로 구청을 찾아와 기부 뜻을 밝히고 돌아갔다”며 “대를 이은 선행으로 어려운 주민들이 따뜻한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수성구민 모두가 감사하고 수성구가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키다리 아저씨’ 자녀들 백미 2000포대 기부, 代 이은 ‘선행 DNA’
입력 2016-09-0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