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들의 ‘탈세’… 안경지갑에 4억·세탁기엔 수십억

입력 2016-09-08 17:55

A씨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여관을 팔고 양도소득세 20억원을 내지 않았다. 그는 재산을 감추고 요양원에 숨었다. 국세청은 최근 재산은닉 혐의 분석 시스템으로 A씨의 금융거래를 살펴보던 중 A씨가 거액의 수표를 입금했다 인출한 사실을 포착했다. 국세청은 요양원에 찾아가 A씨의 조끼 주머니에 있던 안경지갑에서 4억원 상당의 수표를 발견해 압류했다.

골프장 운영업체 대표인 B씨는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2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B씨가 집에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주거지 수색을 실시했다. 국세청은 사전 현장탐문 등 B씨가 집에 있는 시간에 맞춰 가택수색에 착수, 고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 작품(구입가 4억원) 등 예술 작품을 압류했다.

사채업자 C씨는 세무조사에 따른 증여세 50억원을 내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C씨는 가족이 고급 빌라에 거주하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국세청은 C씨가 부인 명의 빌라에 거주하는 사실을 확인해 수색을 실시했다. C씨는 처음에는 부인과 별거 중이라고 수색을 거부했지만 부인 집에 거주하고 있는 증거들을 내놓자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수색 결과 화장실 물통 아래에서 수표와 현금 수천만원과 세탁기 안에 감춘 수십억원의 채권 서류가 발견됐다.

국세청은 고액 체납자에 대한 재산 추적조사 강화로 올 상반기 모두 8615억원의 체납 세금을 징수하거나 확보했다고 밝혔다. 현금 징수액이 4140억원이었고, 재산 압류 등으로 채권을 확보한 금액은 4475억원이었다. 이와 함께 체납자가 다른 사람 명의로 숨긴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사해행위 취소소송 등 155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재산 은닉 체납자와 협조자 137명을 고발했다. 상반기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3%(1511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7월부터 운영 중인 국세청의 재산은닉 혐의 분석 시스템 효과라는 분석이다. 이 시스템은 체납자의 소득, 소비지출, 재산변동 현황 등을 전산으로 분석하여 호화생활 및 재산은닉 혐의자를 추출한다.

국세청은 체납자의 재산 은닉은 지인이 아니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신고를 독려하기 위한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대 포상금은 20억원이며 지난해에는 344건이 신고돼 모두 8억5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고액 상습체납자 명단 공개 대상자 체납액 기준을 현행 5억원에서 3억원으로 더욱 확대해 연말 국세청 누리집 등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