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인데도 차가 막히네. 고속도로 위로 흩뿌려지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벌초하러 가는 차들이 아닐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친구도 혼잣말처럼 대답한다.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친구의 것이다. “아, 거기요? 냉장고 놓을 자리라서 그냥 도배하기로 했어요. 타일을 붙일 필요는….” 통화가 길어진다. 아까부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갑작스레 길을 떠나는 바람에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친구가 공사 현장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타일 기술자는 일당이 30만원이야. 통화를 마친 친구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한다. 게다가 기술자 구하기도 힘들어. 모두 깜짝 놀라 한마디씩 한다. 와. 대단한데? 하던 일 다 그만두고 타일 기술을 배우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일 마치면 집에 가서 아무 고민 없이 발 닦고 자면 되는 거잖아. 인간관계 복잡할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고.
정말 지금 우리 현장에서 일하는 타일공 아저씨는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아. 친구가 덧붙인다. 날마다 오후 네다섯 시쯤 되면, 집에 있는 부인하고 통화를 해. 그것도 남들 다 들으라는 듯이 스피커폰으로 말이야. 저녁으로 무얼 먹고 싶은지 주문하는 거야. ‘오늘은 알탕 먹고 싶어. 고춧가루 팍팍 넣고, 시원하게 끓여 놔.’ 이런 식이야.
타일공이 된 나를 상상해 본다. 땀에 젖은 몸으로 집에 돌아가 뜨겁게 샤워를 한 뒤, 먹고 싶었던 음식이 정성스레 차려진 상 앞에 앉는 순간을. 그 순간 나는 손으로 만져질 듯 뚜렷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정말 내 것이 된다고 해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싶은 자랑스러운 행복이 내 것이 된다고 해도, 나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을 행복으로 누리며 살아갈 신통한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잘 모르는 누군가의 행복이 나에게 온다는 상상 자체가 볕 좋은 가을날,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부실한 낭만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글=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행복의 능력
입력 2016-09-08 18:11 수정 2016-09-09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