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이자 소설가, 페미니즘의 대모 시몬드 드 보부아르(1908∼1986)의 미발표작이다. 58세 무렵 썼지만 사후인 1992년에야 프랑스에서 선보였다. 국내 출간은 처음이다.
그녀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선언하며 평생의 지적 동반자 장 폴 샤르트르와 관습을 파기한 ‘계약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여러모로 떠올리게 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전반적인 기조는 양성평등보다는 젊음과 노화에 쏠려 있다. 또 육체적 늙음이 상호 신뢰가 굳건했던 중년 부부 사이에 묘하게 균열을 내는 과정이 아주 섬세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육십이 넘어 은퇴한 교수와 교사 부부인 앙드레와 니콜이 주인공이다. 재혼한 사이인 두 사람은 남편 앙드레가 첫 결혼에서 얻은 딸 미샤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난다. 앙드레의 시점과 니콜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다. 같은 사안을 두고 어떻게 서로 다른 생각과 해석을 할 수 있고, 오해가 빚어질 수 있는지를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 이상 무언가에 매이지 않고 여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그런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는 침울한 기분을 선사할 수 있다. 두 사람도 그렇게 늙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
“우리는 마지막 나이를 한창 꽃피우고 있는거야.”(앙드레)
“우리 나이에 무엇이 남아있겠어? 이건 꿈이야, 난 곧 깨어날 거야, 내 육체를 다시 갖게 될 거야.”(니콜)
니콜의 젊음에 대한 집착, 늙음에 대한 환멸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좋은 부녀 관계에 대한 질투로 이어진다. 근저에는 남편의 딸 미샤의 젊음에 대한 질투가 깔려있는 것이다.
나이 드는 건, 내 몸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것 못지않게, 상대의 몸도 시들어가는 걸 수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종국엔 부부로 함께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는 유난히 사회문제에 대한 주제가 대화 속에 많이 등장한다. 미국과 소련의 군비 확장 경쟁에 대한 우려, 관료주의 등 소련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감 등이 토로된다. 이는 소설 속 남편 앙드레를 작가의 남편이자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샤르트르로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또한 소설 속의 많은 에피소드는 1960년대 소련 사회를 기록처럼 보여준다. 보부아르 부부는 작가연맹의 초대를 받아 1962년에서 1966년까지 소련을 수차례 여행한 바 있다.
보부아르 부부가 부르짖었던 사회 참여의 정신, 양성 평등의 기치에 영향을 받으며 청춘을 빚졌던 중년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소설이다. 최정수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모스크바에서의 오해] 국내 첫 출간되는 보부아르 미발표 자전소설
입력 2016-09-08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