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는 이제 사라졌는가? 흑인이 대통령인 미국에서는 어떤가? 종종 외신으로 전해지는 미국에서의 흑인 살인은 예외적인 사고, 또는 소수 백인들의 시대착오적 범죄에 불과한 것인가?
미국의 흑인 저널리스트 타네하시 코츠(41)가 쓴 ‘세상과 나 사이’는 1950∼60년대 흑인 인권운동 시기에 나온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렬한 어조로 미국의 인종주의를 고발한다.
“네가 알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이거야. 미국에서는 검은 몸을 파괴하는 게 전통이라는 거다. 그건 문화유산이다.”
“검은 목숨에 대한 약탈은 이 나라의 유년기부터 반복적으로 주입돼 왔고, 역사를 거치며 강화되어 결국 그들의 가보가 되고 지성이 되고 감수성이 되었다.”
이 책이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됐고 저자 코츠가 40세에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충격적으로 들린다.
이 책은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50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2010년대의 현실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 시대 미국을 살아가는 흑인들이 느끼는 공포와 분노의 실감을 전해주면서 인종주의의 현실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깨트리고자 한다.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됐다. 코츠는 자신의 성장사와 가족사, 흑인 동창생의 죽음, 그리고 흑인운동의 역사 등을 들려주며 열다섯 살이 된 아들에게 미국이 흑인에게 어떤 나라인지 얘기한다.
“내 어린 시절에 볼티모어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건 이 세계의 비바람 앞에서, 그 모든 총과 주먹, 부엌칼, 강도, 강간, 질병 앞에서 알몸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법은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네가 사는 시대의 법이란, 길 가는 너를 멈춰 세우고 몸수색을 하기 위한 구실, 다시 말해 네 몸에 더 많은 폭행을 가하기 위한 구실이 되어 왔다.”
코츠의 문장은 단호하고 냉정하다. 수많은 흑인들이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고, 그들을 살상한 백인들은 처벌받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는 아들이 흑인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비관하거나 불안이나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기를, 세상에 속거나 눈을 감고 꿈이나 종교로 도피하지 않기를, 눈을 부릅뜨고 진실을 직시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이 폭력적 구조 속에서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런 문장들을 낳은 듯 하다.
“‘화이트 아메리카’는 우리 몸뚱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들의 배타적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된 연합체란다. 때로 이 권력은 직접적이지만(린치), 때로는 교활하지(빨간 줄 긋기).”
“게토는 인종주의의 우아한 행동이자 연방 정책에 의해 입안된 킬링필드란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존엄성, 우리의 가족, 우리의 부, 우리의 생명을 약탈당하는 곳이야.”
이 책은 미국에서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미국 최고의 도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100만부 이상 팔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여름휴가에서 읽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코츠의 글은 ‘힙합 세대의 제임스 조이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어두운 현실을 강렬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묘사한다. 그는 힙합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해 왔다.
“이것이 너의 나라다. 이것이 네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너의 몸이다. 너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살아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책을 읽다보면 분노에 찬 래퍼의 다소 긴 랩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세상과 나 사이] 화이트 아메리카, 짓밟힌 ‘검은 몸’ 위에 세운 제국
입력 2016-09-08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