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안방극장을 장악했던 ‘센 언니’ 캐릭터가 물밀 듯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10∼20대 여배우들의 발랄함이 채우고 있다. 하지만 여주인공 캐릭터를 찬찬히 뜯어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고 씩씩한 ‘캔디형’이거나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능력에 힘입어 신분 상승하는 ‘신데렐라형’이다.
‘센 언니’가 장악했던 드라마
폭염과 함께한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강했다. 주체적이고, 명쾌한 성격을 보여줬다. 시원시원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최근 종영한 ‘굿와이프’(tvN)의 김혜경(전도연)과 김단(나나), ‘원티드’의 정혜인(김아중)과 ‘닥터스’(이상 SBS)의 유혜정(박신혜)이 그랬다.
강한 여성을 보여줬지만 드센 느낌을 주지 않았다는 게 이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협박을 하는 상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이며 뼈 있는 말을 하거나(김혜경), 위트와 당당함으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거나(김단),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담담하게 거래를 제안하거나(정혜인), 실력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유혜정). 강한 여성의 다양성을 제시해줬다.
이는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는 캐릭터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법정드라마의 변호사(김혜경)와 조사관(김단), 의학드라마의 의사(유혜정), 스릴러드라마에서 아들의 납치범을 쫓는 엄마(정혜인)에게서 ‘여자’라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캔디’ ‘신데렐라’ 틀에 갇히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안방극장 분위기는 다시 핑크빛이 됐다. 청춘 사극, 로맨틱 코미디, 멜로 등의 장르가 장악하면서다.
지금 방송 중인 로맨스물의 여주인공들은 대체로 처지가 궁색하다. ‘구르미 그린 달빛’(KBS)의 홍라온(김유정)은 빚을 갚지 못해 남장을 하고 내시가 돼 궁에 들어간다. ‘질투의 화신’(SBS)의 표나리(공효진)는 생계형 기상캐스터로 한푼이 아쉬워 방송국의 궂은일을 자청한다. ‘함부로 애틋하게’(KBS)의 노을(배수지)도 생계형 다큐 PD다.
이들은 사는 게 유난히 팍팍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힘들어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낸다. 그리고 이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잘나가는’ 남자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다.
홍라온은 그녀가 남장여자인지 모르는 세자 이영(박보검)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하고 있다. 표나리는 잘 나가는 앵커 이화신(조정석)과 재벌 3세 고정원(고경표)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노을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한류 스타 신준영(김우빈)과 재벌 3세 최지태(임주환)와 삼각관계다. 어떻게 변주를 준다고 해도 이들은 결국 왕자님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 ‘신데렐라’인 셈이다.
‘W’(MBC)의 오연주(한효주)와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SBS)의 해수(아이유)는 캔디형 캐릭터로 분류할 수 있다. 발랄하고 엉뚱해서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움을 무기로 난국을 헤쳐 나가면서 남자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식이다.
이에 대해 한 드라마 PD는 “로맨스물에서 여주인공 캐릭터가 다소 뻔한 틀 안에 갇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시청률이 중요한 드라마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기보다 안정성을 추구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센 언니’들이 빠져나간 자리… 안방극장 ‘캔디·신데렐라 캐릭터’ 천하
입력 2016-09-08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