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선박금융 원금 상환을 유예한다, 만기 연장을 해준다 하는데 다 쓸데없는 소리예요. 도움이 안 돼요. 저희 같은 업체들이 금융권에서 언제부터 대출을 받았다고 이런 대책을 내놓는지 모르겠네요.”
전자제품 제조업체 사장 A씨는 7일 국민일보 기자와 통화하며 “금융지원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대책”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A씨가 한진 로마호에 실어 보낸 화물은 싱가포르에서 선박이 가압류되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 같은 화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제품이 목적지에 제시간에 잘 도착하는 것밖에 없다. 그래야 대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과 정부가 물류대란 대응 방안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화주와 포워딩 업체(화물운송 대행사)들이 운송 지연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들은 사태가 장기화하자 한진해운과 정부의 무능, 무책임에 분통을 터뜨렸다.
한 포워딩 업체 이사 B씨는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 항만에 도착해서 내려야 하는 물건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이 업체는 컨테이너 100대에 홍삼과 자재를 실어 미주와 유럽으로 보냈지만 물품이 제때 도달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진은 “좋은 결과 기대”만 되풀이
B씨는 “한진해운에서 전화도 잘 안 받지만 계속 연락해서 ‘지금 배가 어디에 있습니까. 상황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준다”며 “외국에 직접 연락해 ‘배가 왔느냐. 화물을 내리고 있느냐’고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시간 낭비를 많이 하고 있다”며 “새롭게 나가는 화물에 대한 공간도 없고 운임은 올랐다”고 덧붙였다.
한진해운은 채권단과의 협상 난항으로 법정관리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고객사에는 ‘상황이 잘 풀릴 것’이라는 식으로 안심시켜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달 22일 ‘언론의 법정관리 보도 가능성 관련’이라는 제목으로 고객사에 보낸 이메일에서 “한진그룹에서는 채권단과 그룹의 자구안에 대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대상으로 협의 중”이라며 “채권단에서도 기존에 제시한 종전의 채무 재조정안에서 출자전환 비율 추가 조정을 검토하는 등 조만간 좋은 결과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8일 뒤인 30일 ‘추가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B씨는 “한진해운 컨테이너에 물건을 적재하고 배에 싣는 건 1주일 전에 다 이뤄진다. 그런데 그 전주에 그런 공문이 와서 우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물건을 실었다”고 했다.
정부·한진만 애타게 바라보는 화주들
한국합성수지가공기계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우리는 아무 대책을 세울 수 없잖으냐. 정부와 한진해운만 바라볼 뿐”이라고 했다. 조합 소속 22개 중소기업은 다음 달 19일부터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산업 전시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전시물 컨테이너 12대를 싣고 지난달 29일 부산항을 출발한 한진 수호호는 이달 1일 경유지 상하이항에 도착했지만 6일이 지나도록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포워딩 업체에는 화주들로부터 “언제 내리느냐. 화물을 인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연락이 쇄도하고 있다. 포워딩 업체는 “기다려 보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한다고 한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7일 오전 9시 기준 피해 신고가 161건으로 전날보다 26.1%(42건) 늘었다고 밝혔다. 피해액은 약 7000만 달러(764억원)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 주를 고비로 보는 중소 무역업계의 신고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날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긴급 한국화주협의회를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한진해운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조속한 물류 정상화 방안 수립, 충분·신속한 대체선박 확보, 물류대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응 시스템 구축 등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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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허경구 기자 kcw@kmib.co.kr
화주들 “배 어딨냐고 한진에 물어도 대답 안해” 분통
입력 2016-09-08 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