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發 물류대란, 원칙과 현실 사이… 정부 ‘진퇴양난’

입력 2016-09-07 18:11 수정 2016-09-07 21:28

서울 중구 한진그룹 본사에 7일 400여명의 한진해운 노동조합원과 부산시민이 머리에 붉은띠를 두르고 모였다. ‘한국선주협회’ ‘부산항발전협의회’ ‘부산시민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이름이 붙은 피켓에는 “우유부단 은근슬쩍 부산시민 분노한다” “해운 없이 조선 없고 해운 없이 미래 없다”는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경찰이 굳게 가로막은 정문 앞에서 이요한 비대위장은 “무책임한 경영진과 부실한 정부 대책 때문에 대한민국 해운산업과 항만이 다 죽게 생겼다”고 절규했다.

같은 시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관계장관회의 준비로 분주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내놓기로 한 1000억원을 얼마나 빨리 융통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것 외에 새롭게 내놓을 대책은 없을 것”이라며 “이제 와서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난감해했다.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신속히 결정했던 정부가 물류대란이라는 암초를 만나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한진그룹이 1000억원을 추가로 내놓았지만 정부나 채권단이 더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없다. 6일 당정협의 후 “한진그룹이 추가로 담보를 제공하면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한진그룹에서 더 이상 담보를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채권단 관계자는 “1000억원으로는 물류대란을 막기에 부족하다고 하지만, 해외 항만과 협상을 벌이고 화주들이 나서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며 “일단은 대주주인 한진그룹의 지원금액을 기초로 최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채권단과 정부는 이제 와서 자금 지원에 나서기도 어렵다. 물류대란까지 감수하며 지켜온 구조조정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직후 “혈세를 투입하지 않고 정상화에 성공한 현대상선과의 형평성에도 부합하고, 소유주가 있는 회사의 유동성은 자체 해결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켰다”고 내세웠다. 정부는 한진해운을 청산하고 현대상선이 영업부문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퇴출시키려는 구상이었다.

급기야 한진해운 법정관리인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나서서 자금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당장 태평양에 묶여 있는 선박을 미국에 입항시키려면 미 법원에 자금조달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법원 측은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을 현대상선에 인수시키고 청산하는 방안도 한진해운의 정상 영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국가경제와 채권자, 화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신규 자금 제공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재촉했다.

미국 GM, 크라이슬러, 일본 JAL의 구조조정 때도 법정관리 상태에서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상화에 성공하고 공적자금도 대부분 회수한 사례가 있다. 법원도 “설령 한진해운이 파산한다 하더라도 신규 자금을 전액 변제한 후 파산 절차를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당장의 물류대란 여파를 수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한진해운 정상화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유 부총리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한진해운, 한진그룹, 채권단, 화주 등이 사태 해결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도 조속히 마련해 추진하겠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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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지방 fattyk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