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물밑 조율’ 좋았는데… 정기국회 협치는 가시밭길

입력 2016-09-08 00:35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누리과정 충돌로 빛이 바랬지만 사실 여야 3당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은 ‘물밑 협치’의 결정판이었다. 협상 실무를 맡은 원내수석부대표는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했고, 이들의 중재로 여야가 한 발씩 물러서면서 타결점을 찾았다.

위기

추경안이 국회로 넘어온 건 지난 7월 26일이다. 이후 지난달 8일 처음 3당의 잠정 합의안이 공개됐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과 저녁을 먹다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에게 받은 가합의안을 슬쩍 흘리면서다. 새누리당 김도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각 당에 보고도 하기 전이었다. 양당은 즉각 최종 합의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더민주가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구조조정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할 수 있다더라”는 얘기가 여당발로 흘러나왔다. 박 수석은 펄쩍 뛰었다. 이미 당내 강경파들에게서 맹비난을 받은 터였다. 입지가 좁아진 그는 김도읍 수석의 사과 없이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조율

보다 못한 김관영 수석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일요일이던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김관영 김도읍 수석이 만났다. 둘은 추경예산안 처리 일정에 관한 합의문 초안을 만들었다. 서울 강남의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지역구(충남 천안)에 가 있던 박 수석을 불렀다. 2주 만에 3자 회동이 성사됐다. 술자리는 김도읍 수석 집으로까지 이어졌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두 야당 수석은 성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김도읍 수석 딸에게 선배 노릇을 톡톡히 했다. 다음날 아침 박 수석이 일어나보니 바지 뒷주머니에 ‘합의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22일 저녁엔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 만찬이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관영 수석은 옆방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났다. “김현미 예결위원장에게 전화 한통 넣어 달라. 집권 여당 대표가 얘기하면 협상이 좀 풀리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결단

정 원내대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 위원장에게 “도와 달라”고 자세를 낮췄고 김 위원장도 “이왕 할 거면 내용을 잘 담자”고 한 발 물러섰다. 두 사람은 10분 넘게 통화했다. 이후 3일 만인 지난 25일 3당 원내대표가 ‘예결위 심사를 재개해 30일 추경예산안을 처리하고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사인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3당의 협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거취가 핵심 변수라는 평가가 많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