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통해 가장 중요한 것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입력 2016-09-07 20:41 수정 2016-09-07 20:54
지난달 말 기록적인 폭우로 토사가 들어찬 경북 울릉도 사동침례교회 예배당. 탁수근 목사의 가족(아래 사진). 사동침례교회 제공

‘어느 날 한 목회자가 예배당으로 토사가 밀려오고 물이 가족이 있는 집에까지 들어차는 것을 목격한다면?’ 최근 경북 울릉도 사동침례교회 탁수근(45) 목사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아찔한 위기상황 속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탁 목사는 7일 전화 통화에서 “폭우 속에서 하나님이 제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해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울릉군에는 매일 평균 400㎜의 폭우가 쏟아졌다. 30일 오후 3시쯤에는 예배당과 사택으로 토사와 물이 들이닥쳤고, 사택 한쪽 흙벽이 무너져 내렸다. “저는 교육관에 있다 나왔는데 아이들과 아내가 사택 창틀에 매달려 있었어요. 무작정 가족을 구하려고 뛰어 들어갔어요.”

60여㎡(약 18평) 정도인 사택의 거실에 흙탕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내 강성화(43) 사모는 막내아들 이삭(2)을 안고, 탁 목사는 첫째 우림(10)과 둘째 온누리(7)를 창문틀 위로 올렸다. “둘째가 그 와중에 ‘아빠, 내 자동차’ 그러면서 물에 떠있는 장난감을 쥐려고 하는 거예요. 첫째는 저한테 ‘거기서 움직이지 마. 살기부터 해야지’ 그러더군요.” 그 짧은 순간 탁 목사는 둘째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다.

“하나님 앞에 제 모습이 둘째처럼 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 상황에서 중요한 건 우리 생명이잖아요. 제가 목회에서 (외형적) 성공을 추구한 건 아니지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사실 목회란 그런 것과의 싸움인데…. 하나님이 그날 우선순위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어요.” 그는 주일인 지난 4일 오전 ‘우리의 우선 순위(마 6:33)’를 주제로 설교했다.

흙탕물 자국이 가득한 100여㎡(약 33평) 예배당. 집기는 파손돼 대부분 버려졌고 장의자만 몇 개 놓여 있었다. 성도 20여명 중 다수는 서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가 마음속에 늘 간직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뿐입니다. 그 사랑을 마음에 새기면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가장 먼저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해를 겪으면서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탁 목사는 목이 메여 제대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려 내렸다. 그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예배당 집기도 장만해야 하고, 사택은 이제 쓸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수해를 통해 저와 저희 교인들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에 대해 깨닫게 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더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탁 목사는 현재 가족과 함께 인근 모텔에서 숙식 중이다.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유영식 목사) 소속인 사동침례교회는 오는 19∼21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리는 교단 총회에서 수해 복구를 위한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울릉도 내 다른 교회 피해 상황을 물었다. 탁 목사는 웃으며 답했다. “울릉도에 있는 30여 교회 중 침수된 곳은 저희 교회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거죠!”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