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015 개정 교육과정 <하>] 미술 통해 역사 배운다… 신나는 ‘거꾸로 수업’

입력 2016-09-07 18:21
한국사 담당 장성예 교사(가운데 서 있는 사람)가 지난 5일 대전 유성구 전민고등학교 1학년 6반 교실에서 ‘조선 문화 갤러리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의 한국사 수업은 ‘거꾸로 수업’으로 학생들이 동영상을 미리 시청한 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참여활동을 한다.

한국사 수업 시간인데 학생들은 4∼6명씩 모여앉아 문구용 칼과 가위로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오려 붙이고 있었다. “이 도자기 뭐였지?” “이 책 이름은?” “이거 어디서 본 그림인데.”

서로 묻고 답하다 막히면 교과서를 뒤적거렸다. 담당 교사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다 아이들이 부르면 다가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교과서도 참고 자료에 불과한 듯했다. 지난 5일 대전 유성구 전민고등학교 1학년 6반 한국사 수업은 겉으로 보기엔 역사를 배우는 중인지, 미술을 공부하는지, 잡담을 하고 있는지 구분되지 않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면 학교 현장에서 공고하게 유지됐던 ‘지식 칸막이’가 낮아진다. 체육시간에 공을 차면서 수학 개념을 익히거나 미술 음악 같은 예술 과목을 역사 사회 과학 지식 등과 융합해 배우게 된다. 전민고는 2018년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기 앞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민고 한국사 담당 장성예 교사는 이날 수업을 ‘조선 문화 갤러리 만들기’로 꾸몄다. 조선시대를 도자기 그림 등 예술품이나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사상 등을 주제로 색지(A4 용지 8장 크기)에 재구성해 보는 작업이다. 장 교사는 “조선 전·후기를 나누고 예술·문화, 과학·기술, 지리지·지도, 역사서, 사상 등 5가지 주제 가운데 3가지로 꾸미세요”라고 주제를 제시했다. 아이들은 장 교사가 미리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려놓은 동영상 강의를 듣고 왔기에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의견을 냈다. “난 예술·문화를 다뤘으면 좋겠어.” “사상보다는 역사서와 지리지로 꾸미면 도서관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 주제를 정한 팀은 역할을 분담했다. 한 명이 교과서를 뒤적이며 “조선 후기, 신윤복의 미인도”라고 말하자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미인도 그림을 찾아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나머지 학생들은 미인도 그림과 이름을 오려 색지에 붙였다.

교과서는 참고자료로 활용됐다. 한 학생이 풍경을 그린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오린 뒤 손에 들고 “이게 뭐지?”라고 묻자 한 학생이 “인왕제색도”라고 답했다. 다른 학생들은 믿기 어렵다는 듯 교과서를 뒤적였다. 경쟁하듯 그림을 찾던 학생 가운데 한 명이 교과서 한쪽 구석에서 인왕제색도를 발견했다. 가장 처음 인왕제색도라고 말했던 학생이 “내 말 맞지?”라고 으스댔다. 다른 학생들은 웃으며 설명을 그림에 적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학생들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시대와 분야에 맞춰 문화유산의 그림을 빽빽하게 채운 팀, 그림 개수는 적지만 설명문이 많은 팀 등 제각각 개성이 가득한 작품들이 나왔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완성하지 못한 아이들은 계속 작품 만들기에 몰두했다. 장 교사는 작품 완성을 기다려주고 다 된 작품은 정성스럽게 걷어갔다. 이 작품들로 조선시대 갤러리를 만들 생각이다.

장 교사는 “정해진 시간에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는 강의식 수업이 효율적이지만 중하위권 아이들이 흥미를 전혀 갖지 못했다. 그냥 자는 아이도 많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활동하는 수업은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없을지 몰라도 모든 학생이 흥미를 갖고 참여한다”고 말했다. 1학년 6반 노지예(16)양은 “강의식 수업보다 더 효과적인 것 같다”며 “시험을 앞두고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을 외우는 데 애를 많이 먹었는데, 활동 수업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외워져 좋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