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영석] 與性 버리고 野性 키울 때다

입력 2016-09-07 19:17

“야당 되는 연습 잘하네요.” “아직도 힘 있는 줄 착각하고 있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의 말이다. 야성(野性)과 여성(與性)이 뒤엉켜 있는 새누리당의 현실을 짚은 말이다. 129석 집권 여당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원한 여당일 것처럼 행세하던 새누리당의 야성은 지난달 31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부터 발톱을 드러냈다. ‘멍텅구리’ ‘닥쳐’로 대변되는 막말과 고성을 여과 없이 주고받았다. 청문회도 과감히 버렸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야당 단독 인사청문회가 열린 역사적(?) 순간이다.

20대 첫 정기국회 개원일인 1일에는 발톱을 아예 세웠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에 발끈해 의사일정 보이콧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국회의장실로 몰려가 경호원들과 몸싸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물론이고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도 아예 무시해 버렸다. 지난 2일에는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이 의장실 앞 복도 바닥에 앉아 연좌농성까지 했다. ‘국회의장직 즉각 사퇴’ ‘국민 앞에 사과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서다.

새누리당이 구사한 의사일정 보이콧 정치는 과거 야당의 강력한 정치 무기였다. 이에 새누리당은 언제나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런 새누리당이 보이콧 정치를 유감없이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존재감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2016년 9월 현재 새누리당에는 ‘네 가지’가 없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의회 권력은 지난 총선을 통해 야권에 넘어간 지 오래다. 40%를 넘나들던 정당 지지도는 30%도 힘겨운 상태에 머물며 보수 우익층의 지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집권당 프리미엄인 대통령의 힘도 역효과만 내고 있다. 지지율 10%를 넘는 차기 대선 후보는 한 명도 없다. 외곽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에 성공한다 해도 검증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력 차기 대권 후보가 없다는 것은 정당 존립 자체에 의문부호를 던진다.

새누리당도 앞서 10년의 야당 경험이 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의 ‘배부른 다수 야당’이었다. 무늬만 야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남기기까지 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차가운 현실을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야당 할 각오까지 해야 할 시점이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소리만 질러서는 안 된다. 이번 1차 의사일정 보이콧 정치는 나름대로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하루 동안 모든 전술을 쏟아내는 ‘아마추어 야당’의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이제는 내년 대선까지 전개할 야당 준비 전략이 필요하다. 새누리당의 ‘독립’이 핵심이다.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벗는 게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선 청와대와 자신 있게 각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세월호 문제 등에서 청와대와 다른 독자적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거수기 정당 이미지도 벗어야 한다. 과감히 거리로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도 이젠 새누리당의 독자성을 용인해줘야 한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야당 준비 전략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보수 우파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올 수 있다. 당 내부 결속이 강해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죽어야 산다’는 논리다. 그러기에 지금은 여성(與性)을 버리고 야성(野性)을 키울 때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