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의 이름을 단 법안, 이른바 ‘실명법’의 장점은 홍보 효과다. 법안에 대한 관심도가 집중돼 입법 과정에서 여론을 형성하기 쉽다. 외국에서도 입법의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목적 등으로 종종 활용된다. 그러나 실명법은 명칭만 들으면 법안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자칫 흥미 위주의 법안 발의가 남발될 우려도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서명한 법안은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 반환법’이다. 기업의 남녀차별 금지와 임금 평등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거대기업 ‘굿이어’에서 여성 관리직으로 20여년을 일하다 어느 날 자신의 임금이 다른 남성 관리직보다 20∼40% 적었다는 사실을 알고 8년여간 법적 투쟁을 벌인 레드베터씨의 사연이 단초가 된 법안이다. 레드베터씨는 대법원에서 패소했지만 이를 지켜본 한 판사가 불복해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이후 여러 활동가들이 참여해 사회적 이슈로 번지면서 마침낸 법 제정까지 이어졌다. 레드베터씨가 성차별을 겪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투쟁의 과정이 그대로 법안에 녹아든 셈이다.
9·11테러 당시 구조활동을 펼쳤다가 호흡기 이상 증세로 숨진 미 경찰관 ‘제임스 자드로가’의 이름을 딴 법도 있다. 정부는 자드로가법을 만들어 테러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공무원과 민간인 보상을 확대했다.
사회적 공분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다. 2009년 영국에서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사망사고를 계기로 탄생한 ‘클레어법’이 대표적이다. 클레어 우드(Clare Wood)라는 여성이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 살해당했는데, 가해자는 과거에도 연인을 폭행한 전과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슈가 됐다. 피해자의 부친은 “가해자의 폭력 전과를 알았다면 딸의 죽음도 막을 수 있었다”며 연인의 폭력전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영국은 2014년 가정폭력 전과 공개제도를 도입하고, 정보공개청구로 연인의 폭력전과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성폭행 전과자에 의해 살해된 9살 소녀의 이름을 딴 ‘제시카 런스포드 법’ 역시 마찬가지다. 미 플로리다 주의회는 2005년 12세 미만 아동 상대 성폭행 범죄의 최소 형량을 25년으로 하고, 출소 이후에도 평생 위치추적장치(전자발찌)를 차도록 한 이 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정책 입안자의 이름을 딴 법안도 많다. 현재 프랑스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동법 개혁안인 ‘엘 콤리 법’이 그렇다. 이 법은 주 35시간인 노동시간을 최대 46시간까지 늘리고, 기업이 수주 실적이나 영업 이익이 줄면 정리해고도 가능토록 해고 요건을 완화했다. 주무부처 장관인 미리암 엘 콤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처럼 이름을 딴 법안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대중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여론에 편승한 인기 영합주의적 법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여론몰이만 해놓고 정작 법안 심사 및 처리 과정은 ‘나몰라’라 해 누더기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특정 현안이 터지면 그 이름을 딴 법안을 일단 경쟁적으로 발의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의 당사자인 김 전 권익위원장도 “제 이름을 부르니까 법의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청탁금지법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실명법’ 입법 책임감 높이고 홍보 효과… 흥미 끌기 우려
입력 2016-09-2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