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도리안 그레이] 김준수를 위한, 김준수 팬들을 위한 뮤지컬

입력 2016-09-07 17:46
'도리안 그레이'의 한 장면.씨제스컬처 제공

창작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준수 그리고 김준수 팬들을 위한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원작으로 한 ‘도리안 그레이’는 2013년 워크숍 공연부터 뮤지컬 팬들을 주목을 받았다. 대본을 쓴 조용신과 작곡을 맡은 김문정이 앞서 창작뮤지컬로 좋은 성과를 거둔 바 있기 때문이다.

조용신은 2011년 ‘모비딕’의 대본과 연출을 맡았고, 김문정은 2008년 ‘내 마음의 풍금’의 작곡을 했다. 두 작품 모두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춘 ‘도리안 그레이’는 제작비와 주인공 캐스팅 난항 등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사장될뻔한 이 작품은 김준수 소속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나서면서 급물살을 탔다. 씨제스는 지난해 김준수 주연의 일본 뮤지컬 ‘데스노트’를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뮤지컬 제작사로 발걸음을 뗀 씨제스는 이 작품이 김준수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김준수는 그동안 뮤지컬 ‘천국의 눈물’이나 ‘디셈버’처럼 평범한 인간을 연기할 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품성과 상관없이 그가 나오는 출연분은 거의 매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백작, ‘엘리자벳’의 토드(죽음), ‘데스 노트’의 L 등 전형적이지 않거나 추상적인 배역은 쇳소리 나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나 아이돌로서의 신비한 이미지를 극대화 시키며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향한 탐욕으로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바꾸는 도리안 그레이 역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씨제스가 제작하면서 ‘도리안 그레이’의 규모도 커졌다. 씨제스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제작비가 60∼7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덕분에 흥행연출가 이지나가 각색 및 연출로 나서는 한편 김준수 외에 박은태, 최재웅, 구원영 등 뮤지컬계 스타배우들이 합류했다. 그리고 체코에서 올로케 촬영을 마친 영상, 태국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 등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하지만 화려한 만듦새와 달리 드라마의 전개는 다소 아쉽다. 도리안에게 버림받아 죽은 여배우의 남동생을 여동생으로 바꾸고, 도리안의 초상화를 그린 배질과의 관계를 좀더 농밀하게 그리는 등의 변화는 흥미롭다. 그러나 ‘젊음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주제를 다룬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외할아버지의 학대나 도리안의 연속된 악행 등 여러 부분을 뺐음에도 러닝타임 3시간 내내 이야기가 급하게 흘러간다. 김준수는 노래에 비해 연기가 아쉽다. 도리안 역의 늙지 않은 김준수과 비교해 박은태와 최재웅도 20년 뒤의 모습이 너무 젊게 그려져서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영상이나 춤 등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볼거리가 많다. 이지나는 김준수라는 톱스타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운 연출을 구사했다. 공연과 맞물린 세련된 영상은 마치 김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김준수는 아이돌그룹 시절의 카리스마 넘치는 춤을 보여준다. 10월 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