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오세훈법·우병우 방지법… ‘네이밍 법안’에 숨은 전략

입력 2016-09-24 04:02

별칭인 ‘김영란법’ 대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정식 법률명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입법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누더기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김영란법은 여전히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법제처가 약칭으로 권고한 ‘청탁금지법’도 이미 입에 붙은 김영란법을 대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지법…공격적 네이밍 유혹

김영란법처럼 법안을 처음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법은 흔치 않다. 정치권에서는 주로 공격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름을 포함시키거나 전략적 프레임을 깔고 있는 법안명을 선호한다. 야당이 가족 명의 회사를 통한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한 세법 개정안을 ‘우병우 방지법’으로 부르는 등 특정인을 겨냥한 ‘법안 네이밍’이 그런 사례다. 무상급식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홍준표 방지법’으로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느냐와 상관없이 네이밍 자체로 상당한 압박 효과를 발휘한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의 과다한 변호사 수임료가 문제됐을 때였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관피아 경력이 있는 사람의 공직 임명을 금지하는 이른바 안대희 방지법을 발의할 예정”이라며 그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고 끝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현재까지도 대치 중인 네이밍 전선은 경제 관련 법안이다. 정부·여당은 19대 국회 때부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30개 법안을 ‘경제활성화법’으로 묶어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는 등 수차례 강한 어조로 야당을 압박하며 법안 처리를 당부했다. 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노동개혁과 경제혁신을 위한 법안들이 국회에 막혀 있다”고도 했다.

야당으로선 섣불리 법안 처리에 반대했다가 경제 살리기에 반대하는 정당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정부·여당이 요구하는 경제활성화 법안 30개 중 27개 법안을 처리했다”면서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정부·여당의 공세에 강력 반발했다. 야당은 경제활성화법 대신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등 ‘경제민주화법’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기도 했다.

일단 던져놓고 본다

여론몰이나 정쟁에만 치중한 법안 네이밍은 부작용을 낳는다. 여야의 공방 끝에 흐지부지됐던 나경원법 정봉주법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법안의 정식 명칭은 모두 공직선거법 개정안이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총선·대선을 앞둔 2012년 민주통합당(더민주 전신)이 정봉주 전 의원의 BBK 의혹 폭로 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 공표죄의 처벌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새누리당은 나경원법 발의로 응수했다. 나경원법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의 초호화 피부관리실 출입 의혹이 제기됐던 것을 계기로 허위사실 유포 처벌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발의된 것이다. 여야가 입씨름만 거듭한 이들 법안은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메르스 사태나 세월호 참사 직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비슷한 법안들도 문제다. 사건·사고 이전에 법 제정으로 방지할 수 있던 문제를 방치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23일 “국민적 주목을 받는 사안이 터지는 즉시 각 의원실은 이에 대한 대책 등을 담은 법안 준비에 들어간다”며 “‘이런 중요한 법안을 누가 대표발의했다’는 식의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