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사업가, 30년 우정 넘어선 ‘끈적한 관계’

입력 2016-09-06 21:15

대검찰청이 ‘스폰서·사건청탁 의혹’이 불거진 김모(46)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을 정식수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6일 “제기되는 모든 비위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있는 자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으라”고 지시했다. 법무부는 금융 관련 기관에 파견 나가 있던 김 부장검사를 서울고검으로 전보 조치하고, 일선 업무에서 배제했다.

“천만원 맞지. 처리했다”

김 부장검사는 중·고교 동창인 사업가 김모(46)씨에게 향응 접대를 받고, 지난 2월과 3월에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을 제3자 명의 계좌로 송금 받은 의혹에 휩싸여 있다.

김 부장검사와 김씨가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에는 ‘돈’ ‘계좌’ ‘술’이란 말이 많이 등장한다. 두 사람이 강남의 고급 술집을 자주 함께 다녔으며, 돈 거래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단순한 30년 친구를 넘어선 ‘끈적한 관계’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김 부장검사는 지난해 12월 7일 “친구, 계좌번호 알려줄게. 지난번 이야기한 거 조치 가능할까”라는 문자를 보냈다. 김씨는 “보내줘. 내가 수요일에 처리할게. 계좌. 얼마. 예금주”라고 답했다. 올 2월 1일 김 부장검사가 “오늘 저녁 ○○○(고급 가라오케) 갈 거야? 오늘 아님 난 설 전에 목요일이 좋아∼^^”라고 하자 김씨는 “나 8시30분까지 간다. 와라 친구야”라고 답장했다.

같은 달 3일 오전 김 부장검사는 술집 여종업원의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냈다. 김씨는 “출근해서 바로 보내고 (카카오)톡 줄게” “5백 보냈다” “입금자는 그냥 회사이름으로 했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구”란 문자를 연이어 발송했다. 김 부장검사는 3월 5일 “내게 빌려주는 걸로 하고 월요일 보내줘…도와주라 친구. 나중에 개업하면 이자 포함 곧바로 갚을 테니”라고 한 데 이어 실제 월요일인 8일 계좌번호 하나를 보냈다. 김씨가 당일 오후 “천만원 맞지. 처리했다. 근데 실수로 회사 이름으로 보냈네”라고 하자 김 부장검사는 “괜찮아. 잠시 변통해서 계좌주 전혀 모르니까”라고 답한다. 김 부장검사가 지목한 계좌는 친구인 박모 변호사의 부인 명의로 개설된 것이다.

김씨는 “1500만원은 김 부장검사의 ‘세컨드’(내연녀)에게 갔으며 돌려받지 못했다”며 자신이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부장검사 측은 김씨의 협박으로 빌린 돈에 웃돈까지 얹어 갚았다고 맞서고 있다.

“압색 대비해서 조치해. 휴대폰도 바꿔주라”

김씨는 지난 4월부터 서울서부지검의 수사 대상이 됐다. 4월 19일∼7월 5일 사기 등 혐의로 8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7월 이후 두 사람의 대화 통로는 추적이 어렵다는 텔레그램 메신저로 바뀐다. 김 부장검사는 검찰에 다녀온 김씨에게 어떤 내용으로 조사받았는지 꼬치꼬치 묻고, 두 사람의 행적 관련 진술에 대해 ‘이렇게 답하라’는 식으로 거듭 요구했다.

김 부장검사는 7월 10일 “박○○(주임검사)나 여자 수사관이 조사할 때 너랑 나랑 술 먹은 거만 물어봤어, 아님 2차도 갔느냐고 추궁했어?” “여자 미리 사진 보내주고 정해서 술 마시는 집이다, 이런 거 니가 이야기했으면…그것만 가지고도 문제가 되고 옷 벗어야 할 거 같다” “내가 30분 마시다가 다음 날 아침 회의 있다고 12시 넘으면 먼저 갔다고 해야 해” 등의 메시지를 연거푸 쏟아냈다.

그는 다음날 ‘수사방해’ 행위로 볼 여지도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이 미친 척하고 압색(압수수색)할지 모르니 만에 하나 대비해서 집 사무실 불필요한 메모 등 있는지 점검해서 조치해” “인스타그램도 메모리에는 남아 복원될 수 있다고 하니 한번만 더 휴대폰도 제발 바꿔주라” 등이다. “꼭 살아남자 친구”라는 말도 했다.

김씨는 이날 60억원대 횡령·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대검 감찰본부는 이르면 7일 김씨를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정황을 종합하면 김씨가 평소 보험 성격으로 김 부장검사를 ‘관리’하다가 자신이 형사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는데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자 외부에 폭로했을 개연성이 높다.

김 부장검사에게 범죄 소지가 발견되면 곧바로 정식 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 김씨가 김 부장검사 외에 다른 검사들도 접대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감찰·수사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지호일 황인호 기자 blue51@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